티스토리 뷰

봄이 오고 있다.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다. 시청 광장이거나, 이제 다시 쓸쓸해져가는 대한문 앞이나 몇몇 군데에 조그마한 촛불들이 피어오르곤 했지만, 우리 모두의 생활과 마음을 덥히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막연하게 빨리 봄이라도 왔으면 하곤 했다. 그 봄이 이제 오고 있다.

그 겨울 사이 다시 몇 편의 추모시와 글을 써서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가장 최근의 시는 밀양의 고 유한숙 어르신 100일 추모제에 바치는 시였다. ‘원전마피아들의 짜릿한 속셈만 흐르는 곳/ 푼돈의 모략이 판치고/ 죽음의 전류가 관통하는 메마른 땅/ 계엄의 헬리콥터가 뜨고/ 점령지의 병사들이 진주하는’ 그곳으로 아프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으며 밀양으로 가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쯤 우리는 다시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버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인권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전 시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죽어간 반도체 희생자 고 황유미님과 그렇게 ‘의문사’ 당해간 분들을 추모하는 시였다. 생각하니 황유미님 관련 추모시만 매해 쌓여 다섯 편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아이와 함께 보며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분들은 ‘의문사’다. 산업재해(산재) 신청은 번번이 거부당하고, 사회적 연대에 힘입어 몇 년 만에야 처음으로 열린 반도체 희생자 관련 교섭은 진정성 없는 삼성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간 고 최종범 열사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무노조 삼성의 신화를 복구하기 위해 부산해운대 센터 등 3곳의 센터를 위장폐업시키는 등 ‘부당노동행위’에 나서고 있다. 오는 22일과 28일에는 이에 분노하는 문화제와 대규모 규탄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다시 열린다. 그곳에도 가봐야지.

제주도 강정의 문정현 신부님과 지킴이들, 주민분들은 잘 계시는지. 누군가 또 바닷물에 뛰어들었다던가, 포클레인이나 레미콘 바퀴 아래에 들어눕거나 올라갔다던가, 끌려갔다던가 하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강정을 함께 지키다 구속된 지 1년이 넘어가는 양윤모 선배는 잘 계시는지. 그 선하던 영화평론가를 누가 투사로 만들었는지. 누군가라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가 없는지 날마다 신문을 들출 또 다른 감옥 안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용산참사의 또 다른 희생자 남경남 전 전철연 의장과 평생을 공안탄압의 희생자가 되셔야 했던 범민련 이규재 의장님은 잘 지내시는지. 이렇게라도 안부를 전하니 부디 모두 건강하시길.

그렇게 우리 모두가 조금은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희망버스’가 지난 토요일에는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엘 다녀왔다. 공장으로 가기 전 경부고속도로변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에서 154일째 고공농성 중인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공장지회장을 찾기도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97대의 버스와 승합차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간 얼마나 외로웠을 것인가. 1987년에도 1997년에도 또 언제도 남편은 늘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며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이번에는 결혼기념일날 저 허공으로 다시 떠나갔다고 울먹이는 이정훈 지회장 아내인 한영희님의 편지글을 들으며 울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조합사무실 출입을 막지 말라고 절규하며 경찰들의 숲으로 온몸을 던지고, 최루액이 난무하는 공장 안에서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를 구해 나오던 홍종인 아산지회장을 보면서도 모두가 눈물이 울컥했다.

2012년 굴다리 고공농성 151일,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이정훈 지회장과 함께 저 외로운 광고탑에서 129일을 버티다 눈물을 머금고 이 투쟁을 위해 내려온 이였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회적 진실을, 인간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민주노조가 도대체 뭐길래 이 기나긴 투쟁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거기 내 일처럼 나서서 일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회적 정의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일까. 한순간 터널처럼 어두운 대한민국 사회가 반짝 빛나는 날이었다. 이젠 다시 기운을 내보자고 서로가 서로를 북돋는 웃음과 노래와 껴안음이 끊이지 않는 너무도 아름다운 연대의 들판, 축제의 마당이었다. 어느 곳에서라도 봄이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모두가 유성으로 가는 2차 희망버스를 결의하고 올라왔다. 희망의 버스가 분노의 버스가 되기 전 성실한 노사교섭을 통해 이정훈 지회장이 안전하게 가족과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기륭에서, 한진에서, 쌍용자동차에서, 유성 등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업주들이 구속되고, 그 모든 현장에서 벌어진 사회적 약속 파기, 부당노동행위들에 대한 특검이 실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1700만 노동자 가족들도 조금은 안심하며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 것인가.

물론 안다. 자연의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만, 역사의 봄은, 변혁의 봄은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서 끌어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봄을 맞으러 함께 나서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물결을 떠올려본다. 꿈만 꾸어도 이렇게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송경동 | 시인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