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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온 500여명의 예멘 출신 난민 문제로 한국 사회의 여론이 분분하다. 난민 문제가 지금 국내정치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독일에서 볼 때 그런 정도의 뉴스는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도 이를 계기로 지구촌의 난민 문제를 진지하게 함께 생각하고 문제 해결에 동참할 때도 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주도와 대비될 수 있는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섬을 먼저 떠올렸다. 면적이 20㎢에 불과하고 4500여명이 살고 있는 이 조그만 섬에 튀니지의 정정불안과 리비아의 내전으로 2011년에는 7000여명의 난민이 몰려들었고, 2013년 10월에는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의 난민 545명을 실은 배가 연안 근처에서 침몰, 39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섬의 여성시장이었던 주세피나 마리아 니콜리니는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을 위한 정상회담에 참석, ‘우리 섬의 공동묘지가 얼마나 더 커져야만 하는가’라는 연설 속에서 “나는 유럽의 이주정책이 그들의 죽음을 빌미로 이주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지녔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 그러나 조각배에 의지한 여행이 그들이 지닌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었기에 나는 그들의 죽음은 유럽의 수치라고 생각한다”고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을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3년 7월8일 이 섬을 직접 찾아 난민을 위로하고 희생된 영령들을 위한 조화를 지중해에 던졌다.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에 즉시 대응하는 난민의 이동루트가 그간에 바뀌면서 현재는 100여명의 난민만이 이 섬을 조용하게 지키고 있다.

이 섬보다 근 90배나 크고 주민의 수도 140배나 많은 제주도의 원희룡 지사는 최근에 제기된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 “제주도가 (난민) 부담을 떠안아서는 안된다. (…) 북한에서 탈북인들이 내려온다면 받아야겠지만 예멘이나 시리아에서 발생한 난민이 제주도로 들어온 것은 순전히 (무사증을 시행하고 있는) 제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걸 두고 국제사회가 ‘이왕 (난민들이) 갔으니 개개의 지방정부나 국가가 이들을 다 맡아라’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제주와 람페두사 두 섬의 난민 문제가 안고 있는 심각성의 정도는 다르지만 이 발언은 우리 사회의 난민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수준을 보여주고 있기에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 난민 문제는 윤리적·인도주의적인 측면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하고, 법적·정치적 문제와 함께 사회적 문제도 종합적으로 검토, 장기적인 차원에서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 격렬하게 논쟁 중인 유럽연합의 난민과 이주자 문제를 둘러싼 여러 입장들을 먼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1951년의 ‘제네바 난민협약’은 난민을 규정한 국제법적인 모태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적 상황을 주로 고려한 이 협약은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의해 유럽과 195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제한이 철폐되었다. 이에 따라 난민은 국제법적으로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이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이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적 정의는 강제적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자와 가령 경제적인 이유에서 자의적으로 고향을 떠난 자의 차이를 분석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법적 성격을 지닌 난민 보호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시 제기된 직접적 계기는 2015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내전 격화와 극심한 혼란이었다.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지에서도 내전과 더불어 기아로 인한 난민의 유럽 이동도 거의 동시에 있었다. 이 분쟁지역과 가까운 터키, 요르단, 레바논이나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아의 상황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육상과 해상을 통한 유럽연합의 지중해 연안국가로 향한 목숨을 건 난민의 긴 행렬은 이어졌다. 2015년 한 해 동안에 85만명이 그리스에, 15만명이 이탈리아로 건너왔고 도중에 3800여명이 사망한 비극의 행렬이었다. 또 이들은 대부분 그리스에서 출발해서 이른바 ‘발칸루트’로 불리는 경로를 따라 헝가리, 오스트리아, 폴란드와 독일 등지로 이동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유럽연합의 통합적인 난민정책은 큰 파국을 맞게 되었고 개별 나라의 국내 정치용의 손익계산서만이 난무하는 상황이 왔다. 또 이런 분위기를 최대한 이용하는 극우세력은 유럽 곳곳에서 약진했다. 또 유럽연합 내에서 100만명이 넘는,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여 난민 문제의 유럽적인 해결을 줄곧 주장해온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난민정책의 중심에 서있는 개별국가가 여전히 기존의 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에 의존하여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이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난민 문제 해결의 전망이 어려워질수록 개별국가만이 과연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안정된 전제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면서 ‘방법론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난민 문제를 단순히 개별국가의 ‘제도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방법론적 제도주의’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시드니 대학의 이주 문제 전문가로서 한국 사회의 이민 문제도 연구했던 스테펜 카슬스는 <이주의 시대>에서 21세기 민족대이동의 복잡한 동기와 동력, 난민의 범주, 난민의 가족, 친척, 친구, 지인 등의 사회적 관계망, 합법적인 구조 밖에 있는 브로커의 연락망, 비정상적인 노동시장, 난민을 돌보는 비공식적인 구호와 구조기관 등 많은 요소를 총체적으로 이해한 토대 위에서 이주와 난민정책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이미 1992년 12월에 국회비준을 거쳐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이제 현실로 다가온 난민 문제의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개발과 더불어 전문인력 양성이 당장에 시급하다. 이번 예멘 난민이 무슬림이기에 ‘테러리스트’나 ‘잠재적인 성범죄자’와 곧장 연결시키는, 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상력 수준을 염두에 둘 때 더욱이나 그렇다. “낯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독일작가 테오도어 폰타네(1818~1898)의 역설적인 증언처럼 고향을 잃은 난민들은 우리의 반면교사다. 우리도 과거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피란민들이 아니었던가.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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