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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북도교육청이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2학기부터 오전 9시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등교시간 늦추기에 찬성하는 쪽은 “장시간의 학습시간, 치열한 입시경쟁, 학업 스트레스 등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등교시간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등교시간 늦추기에 반대하는 쪽은 “학생과 학부모의 삶의 패턴, 학교 교육과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의 변경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갑작스러운 등교시간 변경은 초·중·고 학생들의 불안 심리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피곤한 아이들… 건강한 삶 보장해 줘야

2011년 질병관리본부는 한국 청소년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이 중학생 7.1시간, 일반계 고등학생 5.5시간, 특성화계 고등학생 6.3시간에 불과하며 이는 미국 국립수면재단의 10~17세 권고 수면시간인 8.5~9.25시간에 크게 못 미친다고 발표했다. 또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흡연과 음주에 쉽게 빠져들고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등교시간 늦추기는 아동과 청소년의 신체적 특징을 고려해 인간으로 대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등교시간 늦추기는 오전 8시30분에 시작하던 수업을 9시로 늦추자는 단순 제안이 아니다. 비교육적이고 비정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던 삶의 모습을 바꾸어보자는 의미를 갖는다. 아이들이 왜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학교를 가야만 하는가?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를 할 수 있는 아침의 여유는 불가능한가? 대부분의 직장이 9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학생들은 왜 그보다 일찍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문 앞에 한국 사회는 답해야 한다.

등교시간을 늦추어야 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의 건강한 삶’과 ‘행복’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 시기를 ‘대학입시’를 위해 잠시 인간임을 포기하는 기간으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만들어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했다. 장시간의 학습시간, 입시경쟁, 학업 스트레스, 지시와 통제 중심의 학교문화, 부모와의 대화 단절, 부족한 수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감을 최하위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등교시간 늦추기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의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이들은 등교시간은 학교장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교육감은 관여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현재의 등교시간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결정한 것인가? 현재의 등교시간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결정된 것일까? 실제로 등교시간 결정에서도 학생들에게 참여권을 주는 학교는 거의 없다. 등교시간을 늦춰 달라고 말한 이들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절규에 대해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 학교장이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이제는 답해야 한다.

시간의 효율성 차원에서 등교시간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학생들은 그 시간까지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른 채 등교한다. 대부분의 학교는 1교시 시작 30분에서 1시간 전에 학생들을 등교시킨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독서, 자기주도학습, 인성교육 등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 시간을 내실 있게 이끌어가기 쉽지 않다. 효과는 별로 없고 오히려 학생과 교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학교를 가보면 알 수 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고 있다. 점심을 먹은 5~6교시에 조는 것이 아니라 아침부터 조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아이들에게 절실하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연구결과 등교시간을 늦췄더니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아졌고, 폭력과 각종 사고 발생 가능성이 확연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들어 등교시간 늦추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련한 교육활동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등교시간을 늦췄을 때 가장 우려하는 측면은 아침 사교육의 등장이다. 이런 식으로 등교시간 늦추기가 변질된다면 ‘청소년들의 건강한 삶’과 ‘정상적인 가정문화 회복’이라는 소중한 가치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린다. 아이들을 쉬게 하면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것이다. 피로한 학생이 자라나면 결국 ‘피로 사회’가 된다.

<이준원 | 고양 덕양중 교장>

고등학생들의 등교길 모습 (출처 : 경향DB)

■ 즉흥적 정책… 학생들 책임의식 약화될 것

정권과 교육감에 따라 입시와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어 학생, 학부모와 학교는 힘들다. 오죽하면 ‘입시 변경금지법’이나 ‘교육공약을 못하게 하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싶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2학기부터 9시 등교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등교시간을 늦춰달라는 일부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수면권을 보장하고 아침밥을 먹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는 즉흥적 실험정책으로, 비판받고 중단돼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과 학교 목표에 대한 본질적인 숙고가 부족하다. 학교는 많은 학생들이 모여 다소 힘들고 제약이 따르더라도 참으면서 학업은 물론 장차 사회인의 삶을 준비하는 곳이다. 따라서 일부 학생들만의 시각에서 편리성과 권리 보장에만 치우치면 책임의식 약화와 학교 질서가 무너짐은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둘째,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처방이 잘못됐다. 치열한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수면 부족 해결과 조식권 보장은 9시 등교라는 단편적 접근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등교가 늦춰진 만큼 더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놀다 자는 아이도 생겨날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배게 하는 것이다. 아침에 여유 있게 등교해 예습·복습 등 수업 준비를 차분히 하거나 친구들과 우정도 나누고, 적당한 운동을 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뇌의학의 세계적 권위자 존 레이티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운동화를 신은 뇌(원제: Spark)>에서 0교시 체육수업을 통해 학습능력이 크게 개선됨은 물론, 우울증 해소, 중독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실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0교시 체육활동의 효과성은 이미 여러 학교 사례를 통해 증명됐다.

셋째, 절차적 민주성과 법령 무시 및 학교자율화를 외면한 교육감 권력의 남용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삶의 패턴, 학교 교육과정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의 변경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추진되면 갈등과 혼란을 양산시킨다. 학교나 지역 실정이 다른 점을 고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수업이 시작되는 시각과 끝나는 시각은 학교의 장이 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학교장이 임의로 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각 학교의 환경을 고려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하도록 자율권을 보장한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모든 학교의 수업시간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말이 좋아 권고지 인사권과 재정권은 쥐고 있는 교육감의 사실상 명령이다.

넷째, 가정과 학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대한민국 부부의 약 44%가 맞벌이다. 갑작스러운 등교시간 변경은 가정의 생활패턴 변경을 요구하고 불안 심리를 가져온다. 논란이 되자 뒤늦게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한 대체교실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학생별 등교시간이 달라지고, 맞벌이 부부 자녀의 경우 학교에 있는 시간만 길어진다. 늦게 끝난 수업으로 오히려 아이들은 저녁시간이 줄어 학원 가느라 저녁밥도 굶을 수 있다. 교사들의 출근시간은 변경 없지만 수업이 늦어져 상담과 행정업무를 더 늦게까지 처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조삼모사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등교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벌써부터 새벽반 학원 강의가 생겨 사교육 증가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학생들의 인권과 건강은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준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장기의 아이들이 다소 힘들고 어려워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학교의 존재이유다. 시·도교육감들은 9시 등교와 같은 즉흥적 실험정책을 중단하고, 학교 교육 본질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길 촉구한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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