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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점점 무능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관료의 인센티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국가는 지난 30년간 깜짝 놀랄 정도로 무능해졌다. 과거 성장의 신화를 써나가던 개발연대에 외국 학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관료들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명문대를 졸업한 최고의 인재들이 엄격한 시험을 거쳐 등용되어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정책을 끌고 나가니 나라가 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독재에 대한 우려들은 많았으나 한국 국가가 유능하다는 데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불과 30년 사이에 이것이 과연 같은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능해졌다.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무능과 책임회피는 다른 대부분의 사건들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의 관료들이 무능해졌는가 하면 그게 아니다. 관료라면 부정적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솔직히 그들 중 상당수는 한때 관료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여전히 뛰어난 젊은이들의 희망사항 제일 앞줄에는 고시 합격이 있고, 현장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관료들은 탁월한 역량과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국가는 무능해졌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지고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관료들은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정당이 평소에 정책경쟁을 거의 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 대선이 다가오면 평소 준비된 정책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어느 정도 준비된 분야도 있지만 대개는 비어있다. 선거 몇 달 전쯤 캠프라는 게 급조되고, 거기에 이런저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뚝딱뚝딱 공약집을 만든다.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앞뒤가 안 맞기도 하고, 전혀 현실성이 없기도 하고, 선거가 낼모레인데 공약집에 빈칸도 수두룩하다. 같은 캠프에 소속된 전문가끼리도 다른 분야의 정책을 잘 몰라서 선거 끝나고 나서야 “그게 우리 공약이었어?” 이러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누군가가 당선되고 집권한다.

한국의 정권은 제왕적이다. 특히 정권 초기에는 그렇다. 정책을 잘 아는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실패할 것이 뻔한 정책도 새 정권의 브랜드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는 이 정책이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쯤 세금을 낭비하고 실패할 것이라는 걸 대충 알고 있다. 정책전문가로서의 사명감으로 반대의견도 내보지만, 정권과 가까운 쪽에서 두어 번 태클이 걸리고 나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신상에 좋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니 관료의 역할은 정책이 실패할 걸 알면서도 말은 안 하고 예측대로 실패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된다. 반면 진짜 해야 할 일도 새 정권이 싫어하면 똑같은 논리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정권은 제왕적이지만 단임정권이어서 근시안이기도 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이제는 경제학자 맨커 올슨이 말하는 ‘유랑도적단’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불경스럽게도 정권을 도적단에 비유했는데, 장기집권하는 비민주적 정권은 ‘정주도적단’, 짧게 집권하고 떠나는 정권은 ‘유랑도적단’이다. 어차피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 바에는 정주도적단이 차라리 나은 면도 있다. 내년에도 수탈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반면 금방 떠날 유랑도적단은 마을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5년 단임제하의 대통령들이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기 정권의 성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본인이 곧 떠날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고, 집권 후반기에 되는 일이 없는 것은 그가 곧 떠날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관료를 위한 구조 매뉴얼 (출처 : 경향DB)


원래 관료를 움직이는 동력은 보람과 명예다. “재무부는 파워풀, 경제기획원은 오너러블, 상공부는 컬러풀”이라는 나웅배 전 부총리의 명대사는 관료의 보람과 명예가 살아있던 시절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추진한 정책이 나라를 잘살게 하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관료의 보람이라면 그 결과 승진하고 직이 높아지는 것은 관료의 명예다. 그런데 유랑도적단하에서는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우니 보람을 찾기 힘들고, 관료 커리어의 정점인 정무직의 상당수를 정치인이나 깜짝발탁 인사들이 채우니 명예를 찾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유능한 관료들의 마지막 인센티브는 부패가 되기 십상이다. 보람도 명예도 없다면 주머니나 채우자는 생각이 모락모락 들지 않겠는가.

국가의 무능은 꾸준히 진행되어왔지만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유능한 관료가 무능한 정책밖에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권의 책임이다. 삼권분립 걱정도 좋지만 관료가 소신껏 일만 하게 해주어도 우리의 국가는 지금보다 훨씬 유능해질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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