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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인 인권연대가 벌여온 운동 가운데 ‘43199 캠페인’이 있다. ‘43199’는 1년에 벌금형 선고를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수(2009년 기준)를 가리킨다. 인권연대는 법과 제도를 고치면 벌금 낼 형편이 못돼 ‘노역형’으로 대체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취지로 캠페인을 펼쳐왔다.

지난 2월25일 이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장발장은행’이 설립됐다. 벌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빌려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립 100일 만인 어제까지 이 은행에서 벌금을 빌려간 사람들이 155명(총 2억8000여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3억원이 넘는 성금까지 모였단다. 만만치 않은 호응이다. 은행을 이용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결코 죄질이 나쁘거나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다. 생계 때문에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실제 벌금을 못내 노역형을 받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단순 절도와 폭행, 도로교통법 위반 등 100만원 안팎의 벌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이라 한다. 가벼운 죄라 해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돈이 없는 자는 다시 감옥에 가라는 것이니 이들의 모멸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죄질에 따라 누구나 똑같은 벌금을 물리는 현행 총액벌금 제도도 논란거리가 된다. 예를 들어 같은 500만원 벌금형이라도 대기업 회장과 서민이 느끼는 충격은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까. 여기에 징역형은 집행유예라도 있지만 벌금형은 한달 내에 일시불로 완납 못하면 ‘노역형’ 처분을 받는다. 가난 때문에 가벼운 처벌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보다 더 엄한 처벌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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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발장은행 주최로 열린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벌금제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받고도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를 선택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은행으로 지난 2월에 출범했다. (출처 : 경향DB)


전문가들은 몇가지 보완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피고인의 경제능력까지 감안해서 벌금형을 일수(日數)로 계산하는 방식의 도입도 거론된다. 그 경우 같은 죄라도 100억원 재산가와 1000만원 재산가의 벌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30일 이내 일시불 납부’ 규정을 바꿔 분납·연납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겠다. 이 밖에 납부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벌금형을 집행유예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장발장은행이 어제 국회에서 벌금제 개혁을 촉구하는 ‘국회로 간 장발장’ 행사를 열었다. 염수정 추기경과 여야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단다. 가난 때문에 감옥에 가는 ‘장발장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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