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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임모 병장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대한민국 군대가 다시 윤모 일병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나는 차마 그 사진과 그 내용들을 세세히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군대에 갈 아들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차마 그 참혹함을 두 눈 뜨고 마주 보기에 가슴이 너무 쓰려서였다.

다른 사건들보다 군과 관련된 사건들은 보다 명백히 국가의 책임이 드러나는 문제이다. 세계에 단 하나뿐인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나 ‘병역의 의무’를 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군대는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소위 ‘신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할 말이 많은, 국민적 공분(公憤)이 이는 사건이다.

특공대를 제대한 내 제부는 심심하면 조인트를 깠던 ‘독사’ 같은 선임을 길에서 만났는데 정말 ‘살의’를 느꼈다며 고개를 흔들고, 해안가 초소에서 근무한 내 남편은 자기네도 임 병장 사건 같은 일이 날 뻔했다고 하고…. 무용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참담한 인권침해 이야기들이 꼬리를 문다. 예의 바른 사회인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삐뚜름하게 모자를 쓰고 건들건들해지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도 고립되고 폐쇄된, 오직 복종만이 강요된 ‘감옥 같은’ 군대생활이 가져온 이상행동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이렇게까지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거리에서 마주치는 군복 입은 젊은이들을 바라보기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적 폭력과 인간의 자존감을 최악으로 만드는 성폭력, 온전한 정신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정서적 언어적 폭력들, 오죽하면 ‘참지 않으면 임 병장처럼, 참으면 윤 일병처럼’ 된다고 했을까. 더 참담한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계속 있어 왔고, 예견됐다는 데 있다. 지난 13일 국민권익위는 4년 전 있었던 여군장교의 자살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 가해자가 처벌도 받지않고 근무하다 또 다른 여성장교를 성희롱해 보직해임됐기 때문이다.

군과 인권은 과연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인권’은 그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기본을 지키기 위해 가져야 할 권리이다. 군인이라고 해서 그 기준이 달라질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 공동의 필요로 인해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들의 안위를 함께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다.

경기도 양주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시민감시단이 병영내 인권 개선을 촉구하며 쪽지와 풍선을 붙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제야말로 군은 변해야만 한다. ‘군수품’으로 물건 취급을 받으며,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당했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인권’을 알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변해야 한다. 지난 8월3일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얼마나 성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야만 한다. 과거와 같이 시작만 요란해서는 국민의 높아진 관심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지난 25일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최전방 경계부대 병사들의 복무기간 단축, 군 내 반인권 행위나 사망사고 수사에 민간전문가가 참관하는 방안 등 여러 제안과 토론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시되는 다양한 대책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처음부터 갖추어야 하며, 그 결과가 정기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만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집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는 태어난 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가야 하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성’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한다. 사회와 단절된 ‘닫힌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인간적 성숙과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군 최고의 전투력이라는 ‘사기’가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 젊은이들의 고통과 절규에 군을 비롯한 정부가 정의롭고 담대한 답을 할 때이다.


정춘숙 |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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