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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문제가 다시 대선정국을 덮고 있다. 현 정부는 임기 내에 사드 배치를 완료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북한은 사드 문제에 개의치 않고 최근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했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장비를 경기 오산시로 공수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보복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 결과 한국의 경제성장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 하고, 심지어 이마저도 2~3차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피해를 과소평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이나 베트남의 경우를 들어 전의를 다지기도 하고, 애국과 주권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좀 이상하다. 외부 세력들은 각기 자신들의 전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사드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 혼돈 속의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냉정한 이해, 자신의 역량과 내구성에 대한 성찰, 안보와 경제를 결합한 포괄적인 국가안보전략에 의해 정합적으로 사드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의 정책결정자들은 이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고, 대책도 없었으며, 아직도 자신들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마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이 기각될 것이라 믿었던 상황인식과 너무나 흡사하다.

최근 들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한반도가 미·중 간 전략적 소통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전환 중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사드 배치에서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중국의 점진적인 현상변경 정책에 의해 사실상 중국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미국의 판단에 기인한다. 한·중 및 한·미관계의 미래는 결국 미국이 의도하는 대중 견제정책에 대해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하면서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 정책이 성공하면 할수록, 한·중 마찰도 더 커질 것이다. 여기에는 퇴로가 없어 보인다. 이는 사드배치 문제를 둘러 싼 미·중의 완강한 입장과 중국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보복조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를 제공키로 한 롯데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강해지는 가운데 13일 손님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중국 상하이 롯데마트 매장에서 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상하이 _ AFP연합뉴스

우리의 운명이 미·중 전략경쟁의 한 패(牌)로 전락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미·중 세력전이라는 혼돈의 시기에 편승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생존을 보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더욱 어려운 처지로 우리를 몰고 갈 것이다. 한국은 현재 중국으로부터의 본격적인 압력은 물론 미국의 보복으로부터도 견뎌 낼 체력이 없다. 사드로 인한 갈등과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 일반 국민들을 절망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를 주장한 위정자들은 그 고통의 최전선에 설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북한은 이 상황을 즐기며 사드 배치와 관계없이 계속 도발을 자행할 것이고, 한국을 극단적인 선택 상황으로 몰고 가고자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강화에 따른 양자택일의 압력 가속과 정치·경제적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답은 아직 대결과 결단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교의 시대여야 하고, 이를 포기할 경우 그 끝자락에는 전쟁과 파멸밖에 남는 게 없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제 공조를 잘 유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주도적인 군사역량을 강화하면서 대비하고, 한반도에서 공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교류를 강화하면서 안정된 남북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역량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다. 사드 관련 한·미 간의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 동시에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도 충분히 반영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이에 기반을 두고 중국, 일본, 러시아도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한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낡은 냉전체제의 논리로 살아갈 수 없다. 국제사회의 역량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흡수해 북핵문제, 한반도 문제, 지역 평화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외교는 만사(萬事)가 되고 있다. 국제정세의 험난함과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우리의 생존권, 번영권, 존엄권을 지켜줄 안정감 있고 희망을 주는 역량 있는 리더십의 출현을 대망한다. 그 지도자는 미국을 안심시키면서도 중국을 설득하여 사드 보복을 철회하게 하고, 북한을 평화의 장으로 견인해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여전히 강대국 정치, 북한의 도발, 신 냉전질서의 도래 가능성, 탐욕스러운 국제 자본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돼버릴 것이다.

김흥규 |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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