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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곡을 잘 틀어주던 LP카페가 생각난다. 그곳에 가면 삐걱거리는 지하 나무계단 벽에 걸린 LP들이 반갑게 반겨준다. 자유로운 생을 추구하는 이들이 카페로 모여들었다. 어떤 음악을 신청했던가. 탐 웨이츠, 알 쿠퍼, 닉 케이브가 떠오른다. 맥주 한 병을 움켜쥐고 자정까지 수다를 떨어도 눈치를 주지 않던 음악창고였다. 지금은 없다.

광고회사에 다니면서 소설을 쓰던 형이랑 매주 방문하던 헌책방이 있었다. 주인은 어쩌다 서점에 나왔고, 부지런히 책 정리에 몰두하는 아저씨가 서점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소설에 대해서 잘 몰랐다. 아저씨는 방문할 때마다 목장갑을 낀 두 손을 모으고 아는 척했다. 거기서 하나무라 만게츠의 장편소설을 구입했다. 우리는 헌책방 문을 닫을 때까지 문학책을 만지작거리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지금은 없다.

대학원 저녁 수업을 마치면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는 과 친구와 몰려가던 아지트가 떠오른다. 산꼼장어 구이가 일품이던 상수역 근처의 작은 음식점. 이곳은 말수가 없는 내성적인 모자가 함께 운영하던 곳이었다. 요란스럽게 단골손님에게 아는 척하지도, 그렇다고 냉랭하게 대하지도 않던 주인아주머니와 아들이 그냥 좋았다. 조심스럽게 꼼장어를 구워주는 아들의 손동작을 보면서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음악성을 논하던 추억이 새롭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마늘치킨을 잘하는 술집에 자주 들렀다. 처음 방문하는 이라면 여기가 카페인지, 치킨집인지 헷갈릴 정도로 멋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매달 그곳에서 닭다리를 뜯고, 생맥주를 삼켰다. 주인아저씨가 가끔 공짜로 내주는 황도복숭아 안주 또한 고마웠다. 입구에 위치한 나무책장에는 이런저런 예술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가객 김광석의 사진집을 꺼내 보면서 술친구를 기다리곤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다.

여기 등장하는 장소는 모두 단골로 드나들던 홍대 인근의 사랑방이었다. 공통점이라면 뜨내기손님이 득실거리는 번잡함이 없었고,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주인의 날 선 욕망이 없었고, 나를 이완시켜주는 적당한 무관심이 존재했다.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그곳에서 40대 시절을 보냈다. 내게 단골집이란 두 번째 삶의 안식처이자 작은 유토피아였다.

최근 십여년 동안 홍대 지역에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지금은 뜸하지만 주말이면 중국인을 태운 관광버스가 도로를 메웠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급등하는 월세 폭탄이 자영업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1년이 멀다 하고 공실로 변하는 유령상가가 등장했다. 미술, 음악, 출판이라는 창조지구로서의 빛깔은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뉴욕 윌리엄스버그처럼 홍대를 떠나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늘어만 갔다.

요새도 자주 방문하는 가게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순간, 크로울리가 행하는 흑마술처럼 쓰윽하고 사라질까 두려워서다. 왜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십년 넘게 오롯이 자리를 지키는 단골의 풍속이 부재하는 걸까. 노르웨이보다 4배에 달한다는 자영업자의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왜 국가에서 자영업자를 위한 획기적인 지원책을 세우지 않는 걸까. 그 많은 세금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구제금융사태 이후 한국은 경기가 좋았다는 시절이 없었다. 어떻게 20년간 지겨울 정도로 경기침체를 반복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차기 대권 주자들의 대선 공약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왕 나선 김에 마음에 와 닿는 단골 활성화 대책을 약속하는 후보가 있으면 좋겠다. 아니, 모든 후보가 의무적으로 영세 자영업자 지원전략을 마련한다면 어떨까. 지키거나 말거나 한 껍데기 공약 말고 정말이지 실현가능한 공약으로. 한국인은 단골이 사라진 쓸쓸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겐 단골이 없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악을 읽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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