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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한 ‘통일대박론’의 후속 조치로 통일준비위원회가 6개월여 만에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통일준비위는 출발부터 그 내재적 모순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적지 않은 파란이 예상된다. 민주평통 등 기존의 정부관련 조직과 업무가 중첩된다는 ‘옥상옥’ 기구나 전시성 행정 논란은 차치하고 크게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통일준비위원회’라는 용어 선정부터가 잘못됐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2014·3·28)이 시사하는 것처럼 독일통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통일’이란 말은 강제성을 띤 개념이고 전쟁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또한 통일은 결과론적 현상이지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독일처럼 오랜 시간 화해와 협력의 ‘통합’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것이 통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조직을 구서독에서는 ‘내독성’이라고 했다. (대만도 유사기구를 행정원 ‘대륙위원회’라 호칭.)
동서독의 법적 통일은 1990년 10월3일 이루어졌으나 서독과 동독은 1972년 양자 기본조약체결 이후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통일이 아닌 통합의 과정을 거쳐 왔다. 즉, 사실상의 통일에 이른다. 환언하면 오랜 ‘통합과정’을 거쳐서 사실상의 통일상태에 이르고 법적 통일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통일대박론이나 통일준비위의 거론 자체가 알게 모르게 통일이 임박했다거나 임박할 징조가 있다는 의미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을 저해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이다.
즉,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이 핵심인데 북측에 ‘흡수통일’의 잘못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신뢰’를 저해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올해 들어 14차례에 걸쳐 미사일·방사포를 발사하는 등 최근 들어 직간접적 군사적 도발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저들이 볼 때는 우리 측 제안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5일 청와대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_ 청와대사진기자단
‘신뢰’라는 개념은 상대방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상대라 함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좋든 싫든 북한의 통치집단, 즉 김정은 지도체제를 말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남북 간의 신뢰형성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성급히 내놓는 이른바 ‘액션플랜’의 지향점이란 것들이 암묵적으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일각에서는 통일대박론을 국내 정치용으로 폄하) 우연치 않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후속 논의들이 협상 상대방의 가장 예민하고 취약한 포인트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작년 12월 장성택 처형과 그동안 북한 군부 권력엘리트의 빈번한 숙청과 교체 등에서 보듯이 아직도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한의 통일대박론을 북한 매체에서 ‘흉악무도한 북침전쟁론’이라고까지 매도하는 형편이다.
끝으로 ‘창조경제론’이 우리나라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고,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었어도 세월호 참사 등 국민생활은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가운데 이제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으로 남북통일은 고사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 상황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세월호 이후 최근에 나도는 ‘국가개조론’ 등을 포함하여 이제는 더 이상 실체가 없는 정부시책 노이즈마케팅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김경수 | 국제갈등·분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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