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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재인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로부터 최악의 외교적 실패를 물려받았다. 그건 사실상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고 또 그로 인해 야기된 새로운 한·미·중 갈등구조를 헤쳐 나가는 일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국가가 되면서 동아시아는 기존의 국제정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이른바 “핵전략 시대”의 동아시아가 된 것이다. 이 시대 갈등구조의 독해를 잘못하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핵국가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수습외교만 하게 될지 모른다. 대통령의 갖은 고생으로 일단 수습외교는 성공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 갈등구조가 하나의 수습이 다른 수습을 요하는 구조인지라 잘못하면 우리가 운전석에는 앉아 보지도 못하고 5년이 다 지나갈 수 있다. 이제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지 설명해 보기로 한다. 전문적 이론이 들어가는 것이어서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인내를 요망한다.

이전 보수 정부는 북한 핵의 비핵화에 대하여 그 효과가 이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경제 제재 카드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무모한 선택을 하였다. 감성적으로는 국민의 응원을 받을지 모르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카드 하나에 매달리는 전략은 무책임한 전략이고, 결국 북한이 마음대로 핵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 주었다. 그 결과가 지난 11월29일 화성 15형 발사와 함께 북한이 선언한 “핵무력 완성”이다. 북한이 선언한 핵무력 완성이 어느 정도 수준의 핵무력인지는 계속 확인을 해 봐야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북한이 이제 미국의 군사적 옵션까지 억지할 수 있는 핵무력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단 외부세력에 대해서 정권의 생존보장을 “거의” 확실하게 달성했다는 의미이다. 이제 동아시아는 핵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핵으로 자신의 생존보장을 담보하는 핵억지력의 문법이 작동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미 냉전 기간부터 미국과 러시아는 가공할 숫자의 핵무기로 상호확증파괴라는 상호 억지력을 달성한 상태이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중국의 최소억지전략으로 인하여 상호 억지력이 걸려있다. 여기에 북한이 끼어 들어와 이제 미·러, 미·중, 미·북, 북·중, 북·러 간의 핵억지력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들 핵보유국의 핵에 대해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전략을 채택해 왔다.

그런데 이 억지력의 세계는 일반 군사안보의 세계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그 이유는 서로의 안보를 위해서 스스로 상대방에게 목숨을 내놓기로 약속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서로 살인을 확실히 보장해야만(상호확증파괴) 선공격이 자살행위임을 알고 아예 공격할 생각을 안 한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냉전 이후 핵보유국들은 이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핵무기에 서로 방어를 하지 않는다는 신뢰구조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이 핵무기는 그 반인륜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값싸게 최상의 안보를 책임지는 도구여서 이익을 내야만 하는 군수산업의 로비가 강한 미국에서는 핵보다는 수익성이 좋은 최첨단 미사일 방어무기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어왔다. 이는 서로 방어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핵국가 간의 신뢰구조를 깨야만 가능한 일이어서 번번이 제동이 걸려왔지만, 이른바 “불량국가”들의 핵보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제동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불량국가는 무모한 공격성을 가진 국가여서 이들의 핵에는 억지력을 넘어서 방어 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미 2001년 9·11 테러로 방어무기 도입이 정당화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북한과 이란이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11월20일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불량성이 다시 규정되었고 12월18일 미국의 국가안보보고서에서 북한과 이란이 불량국가로 규정되었다. 이는 미국이 동아시아와 유럽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한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는데, 만약 이 조치가 기존 핵보유국의 억지력까지 건드리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으로 이어진다면 신뢰구조가 깨지게 되어 그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까지 범위에 들어오는 기능을 가진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서 동아시아에서 한·미·중 갈등구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중국은 최소한의 핵무기로 억지력을 확보하는 최소억지전략을 채택하고 있는데, 만약 미국의 미사일 방어무기가 중국까지 겨냥한 것으로 의심되면 미사일 방어망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핵무기 및 공격무기 개발로 들어서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는 경제개발과 윈윈의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중국의 비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대적 핵무기 개발은 중국이 군사적 야욕을 갖는 국가로 비추어지는 지름길이고 중국이 미국에 의해 포위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핵전략 시대의 문법을 이해한다면 사드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 핵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 미국은 그래서 미사일 방어무기를 들여놓으려 할 것이고, 중국은 핵심이익 때문에 한국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핵전략시대의 이 갈등구조는 지금과 같은 건별 수습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정교한 종합전략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데, 문재인 지지세력이 정말로 야당 및 언론과 싸움을 할 때는 그때가 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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