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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빼고 언론에 나오는 건 다 괜찮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정치인들은 이야기한다. 인지도가 생명력과 영향력을 좌우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행위는 자연스럽다. 자신과 관련된 뉴스에 민감하고, 만나면 사진이 박힌 명함을 건네는 정치인들의 행태도 탓할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정치를 ‘얼굴장사’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지는 각종 기행들은 이런 통념들을 감안해도, 정상적인 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대표가 주도하는 각종 막말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지, 코미디 같은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도부 일원이라는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검찰 포토라인에 선 일부 의원들까지 실소하게 만든다. “주목받고 싶어요”라고 아우성치는 몸부림을 보며 웃지만, 뒷맛은 쓰다.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맴돌던 이런 생각은 류여해 최고위원의 최근 언행들을 보면서 굳어졌다. 그는 지난 18일 당협위원장직 박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중 오열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생중계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울었다는 것인데, 일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 22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선 “혼자 오는 게 두려워 울보가 인형과 함께 왔다”며 인형을 들고 등장했다. 울다가, 웃는 그의 심리 구조가 궁금했다. 원래 성격인지, 정치적 무게감이 약한 원외위원장으로서 이목을 끌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하튼 한국당은 웃음거리가 됐다.
친박근혜계인 이우현 의원은 또 어땠는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그는 “시술한 혈관이 다시 막혀, 스탠트 시술을 했다”며 두 차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지난 20일 검찰에 출석하면서는 “막힌 혈관이 너무 아프다. 진술을 얼마나 견뎌낼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각한 검찰 포토라인에서마저 실소가 터지게 한 그의 유머감각은 존중한다. ‘소명하겠다’고 하면 될 터인데 굳이 “아프다”고 읍소한 저의도 궁금했다. 해병대와 축구선수 출신으로, 국회에서도 체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그가 아프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홍준표 대표는 이런 행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홍 대표는 24일 페이스북에 “당에 해악을 끼치는 연탄가스 같은 정치인들”이라고 했다. 류 최고위원의 언행을 두고는 “우리 당을 험담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의 말” “주막집 주모의 푸념”이라고 했다. 국정농단으로 망가진 당을 일으켰으며, 내년이면 당 지지율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해온 그로선 당 얼굴에 먹칠하는 이런 행태들에 기가 찰 것이다. 하지만 홍 대표는 돌출 행동들이 지난 대선 때 ‘돼지발정제’ 논란을 일으킨 후에도 막말을 생산해온 자신의 업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보수 적통을 자임하는 한국당은 왜 삼류 코미디 같은 당이 됐는가. 한국당은 언론 탓을 한다. 무슨 주장을 해도 실어주지 않으니, 막말과 튀는 행동이라도 해야 언론이 봐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홍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연일 언론의 편파 보도를 문제 삼는다. 김 원내대표는 상복을 연상시키는 양복과 검은 넥타이를 매고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 방문하는 이벤트도 벌였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에게 좋게 써달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 입장이라도 언론이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 입장을 이야기할 통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스스로 초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당은 박근혜 국정농단으로 망해놓고, 지금 이명박 국정농단 보호에 여념이 없다. 박근혜 사당화는 홍준표 사당화로, 친박은 친홍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들이 불리한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언론 탓을 하고,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대선 때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고쳐야 한다며 ‘대선 전 개헌’을 주장해놓고, 이제 와서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내년 말을 개헌 시점으로 제시하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왔는가.
자의든 타의든 한국당은 자해공갈단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여론의 주목이라는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돌출 행동과 발언, 말뒤집기로 스스로에 상처를 입히는 모습이 딱 그렇다. 한국당은 믿음을 잃었다. 아무리 ‘편파 보도’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해도, 지금 행태를 반복한다면 한국당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언론은 줄어들 것이다. 설사 그들이 달리는 차에 뛰어들겠다고 소리쳐도,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때가 올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자해를 거듭하면 나중에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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