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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보건의료통계 지표를 보면 한국의 의료보건체계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병상 수나 입원일 수, 외래진료건수, CT, MRI 등의 의료기기 숫자는 OECD 평균보다 훨씬 많다. 이들 지표는 한국 국민이 병·의원에 자주 가고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의사나 간호사가 부족해 의료진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거나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각종 의료기기가 진료와 치료를 하고 의료진 아닌 사람들에 의해 환자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보건의료제도의 특성은 노인의 의료복지제도에도 그대로 반영돼 요양병원에 지급된 진료비는 2005년 1570억원에서 2010년 2조1312억원으로 불과 5년 사이 12배 이상이나 폭등했다. 우리보다 오래전부터 노인 문제를 경험하기 시작한 독일과 일본, 미국, 캐나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병원이나 시설 중심의 우리나라 접근 방식과는 반대로 홈케어를 노인과 만성질환자의 의료복지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가능한 한 오래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환자의 요구에 기반을 둔 헬스케어 모델로서 ‘정든 곳에서 늙어가기(Aging in Place)’를 적극 실현해 왔는데 환자의 만족도뿐 아니라 효과 대비 비용 감소라는 긍정적 결과가 검증되면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 의료원에서 의료진이 노인 환자의 병간호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선진국의 지역사회 기반 홈케어제도는 노인의 복합적 필요에 부응하여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영양사, 운동지도자, 가사도우미 등으로 이루어진 팀이 환자의 집에서 다양한 치료 및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서비스와 환자 관리를 위해 건강 코디네이터 또는 담당 관리자(case manager) 제도가 만들어져 간호사가 주로 그 역할을 맡고 있다.
홈케어 전문 인력으로 교육받은 간호사는 환자 상태와 주변 환경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판단하여 재활치료와 교육, 복약, 영양, 운동뿐 아니라 식사준비와 청소 등의 가사서비스도 기획하고 관리하면서 노인의 질병과 건강상태를 살핀다. 실제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선 전문간호사가 환자의 입원, 퇴원, 진단시험 오더, 약처방을 하면서 병원치료와 홈케어의 연결고리를 담당하고 있다. 전문간호사가 주도하는 동네병원(nurse-led clinic)이 동네 곳곳에 생겨나 약사, 사회복지사, 영양관리사 등과 함께 지역주민 수만명을 돌보는 지역기반 홈케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조사한 노인들의 희망 거주형태를 묻는 질문에 노인의 74.2%가 자신의 집을, 18.4%가 자녀와 동거하는 집을 꼽아 92.6%가 집에서 살기를 원했다. 고령자 전용주거단지, 그룹홈, 시설 등을 꼽은 응답자는 전체의 7.3%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인의 희망과는 달리 우리의 노인 의료복지 제도는 집 아닌 병원이나 시설의 침대 위에서 여생을 보내는 노인의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해 왔고 살던 집에서 내몰린 노인들의 절망감과 분노는 커져간다. 한 예로 지난 5월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질식사한 사건은 원치 않는 요양병원에 입원당한 사실에 분노한 80대 경증 치매 환자의 방화가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본인의 희망대로 살아가는 것은 국가와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노인세대의 권리이며,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다음 세대의 의무이자 자신의 더 나은 노후를 준비하는 일이다. 지역기반 홈케어는 노인들이 바라는 여생을 보내며 비용도 효과적으로 절감할 수 있고 관련 전문직 일자리 창출도 이룰 수 있는 방안이며, 노인 자살이나 노인 안전, 급증하는 노인대상 사기 범죄로부터의 보호 등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 중심, 환자 중심의 홈케어제도 도입으로 노인들이 정든 곳에서 편안히 늙어갈 수 있는 보건의료 제도가 하루 속히 구축되어야 할 때다.
이건정 | 이화여대 교수·보건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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