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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온 일련의 정부 대책들이 변죽만 울리고 문제의 핵심이나 본질을 외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심화시킨다. 정부 당국이 내놓은 국방인권협의회 설치나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발족 등의 대증요법으로는 근절되기 어려운, 보다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국방지휘부(군 수뇌부)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2005년 28사단 김동민 일병의 GP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국방부는 병영문화개선위를 설치, 논의결과를 정리해 대통령에게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라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군내 인권상담관제 도입, 관심병사들의 순화교육을 위한 캠프 운영 등 병영문화 개선 노력을 부단히 지속해 왔다. 그러나 위원회나 협의회 설치, 또는 각종 프로그램 운영으로 군부대 내의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퇴치될 수 있었다면 진즉에 없어졌어야지 이제 와서 예전의 병영문화보다 더 악화된 상황이 왜 나오는가.

윤 일병 사건 이후 새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심대평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인성은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사회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요컨대, 사병이나 초급간부의 인성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장관급 장교(장군)의 품성이나 인성이 더욱 중요한데 이에 대한 보완책은 외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군과 국방부의 고위급 간부 충원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선진화된 병영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민.관.군 병문문화혁신위원회 출범식'이 6일 서울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열렸다. 류성식(맨앞) 육군 인사참모부장(소장)이 토의에 앞서 군현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방 수뇌부의 인성과 인력구조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방 문민화를 통한 문민통제가 제도화돼야 한다. 유럽이나 중남미의 여러 나라가 여성 국방장관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2007년 아베 신조 내각의 방위상을 여성이 지냈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국방장관 보직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첨예한 남북대치의 한반도 안보상황에서 가능하냐는 질문이 따를 것이다. 필자는 전작권을 미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 군제하에선 일선의 최고위 현역 지휘관인 합참의장이 전쟁 수행의 진두지휘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민간인이 국방장관이 되면 어떤 실익이 있을까. 우선 ‘육방부’로 불리는 군 수뇌부의 폐쇄적 인사구조가 허물어질 수 있다. 국방부와 합참 요직 인선이 보다 유연성을 갖게 되면서 노태우 정부 이래로 우리 군이 추구해 왔던 3군 균형발전과 작전의 효율성을 위한 3군의 합동성 강화를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현재와 같이 육군참모총장, 국방장관, 국가안보실장에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모두 육사 출신이 도맡아 가지고서는 3군 균형발전이나 합동성 강화는 요원할 뿐이다. 게다가 군의 폐쇄성으로 인한 무사안일, 끼리끼리 문화가 만연돼 결국은 그 폐해가 초급간부에까지 미치고 말단부대 관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의 장관급 장교의 다수가 과거 지휘계선상의 예하부대 부대원의 사건·사고 발생 시 ‘초동단계의 사건 축소·은폐, 허위·지연보고’ 등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험에서 후임들의 어려운 상황을 눈감아줄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 단적인 예가 군 수뇌부가 윤 일병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시민단체가 윤 일병 사건을 폭로할 때까지 3개월 동안이나 은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과거 김영삼 정부하에서 하나회 척결 등으로 육사 출신 장군 진급 비율이 60%대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80% 수준까지 올라옴으로써 군 수뇌부의 폐쇄성과 ‘순혈주의’가 지속되면서 사실상의 군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군의 인성 강화와 다양성 배양은 미국처럼 비육사(ROTC 포함) 출신의 장군 진급 비율이 60%까지는 아니더라도 50%만 되어도 초급, 중간 간부의 모병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육사 출신 위주로 편중된 장군진급 추천·선발위원회의 위원들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장군 진급은 말 그대로 무한경쟁을 통해서 진정으로 인품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등용돼야 윤 일병 사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군 수뇌부의 또 다른 문제점 하나. 창군 64주년이 되도록 아직도 국방주권을 남의 나라(미국)에 맡기고 주인의식 없이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김경수 | 국제갈등·분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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