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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진상조사위원회의 권한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하다고 보았던 최근 여야 합의안도 거부한 것이다. 충분히 고생한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접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가 죽어갈 때 구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벗고 싶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없기에 억울한 죽음의 이유라도 밝히는 것이 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중립적인 사람, 정부와 여당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이가 죽은 뒤에 뼈와 살이 갈려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이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그것은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신 국민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전에도 이렇게 엉망이었습니까? 하필 우리 아이가 죽었지만 다른 누군가도 이렇게 죽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얽히고설켜 서로를 봐주는 부패의 사슬을 어떻게든 끊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의 방법으로 가능한가요?”

지난 21일 세월호 참사 가족 총회가 끝난 다음날, 국회 농성장에서 세월호에 자식을 잃은 아버님, 어머님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남들이 지나치다 싶어도 고집스레 원칙을 주장하는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다른 사람은 이런 고통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연민, 생각보다 엉망이었던 나라에 대한 걱정과 분노, 이런 것들이 이분들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결정을 접하고 수긍하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날 밤, 선배 한 명도 오랜만에 필자에게 전화해서 ‘세월호 유가족들 너무한다’고 했다.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이제는 그만하지’라는 것이었다.

응답하라, 청와대 (출처 : 경향DB)


그런데 과연 유가족들이 너무한 것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위기에 처할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고등학생 중 7.7%만이 그렇다고 답했고, ‘부정부패가 철저히 감시되고 있고, 사라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이 6%에 불과하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세대가 직장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세대는 부정부패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유가족들이 오히려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것 아닌가. 부패로 사회의 감시망을 약화시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나서야 하는 상황 아닌가. 필자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났던 분들 중에 소위 ‘유모차 부대’-필자는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다-라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그동안 유기농으로 이유식을 먹이고, 좋은 유치원과 학원을 찾아 아이들을 보내면 좋은 부모가 된다고 생각했다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자신들의 아이를 이 사회에서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이런 ‘각자도생’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고, 부정과 부패로 감시기능이 마비된 현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다 세월호 유가족처럼 세월호 참사를 대할 수도 없고, 소위 ‘유모차 부대’처럼 나서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돈보다 생명이 중시되고, 부정과 부패가 철저히 감시되고 처벌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돌만은 던지지 말았으면 한다.


박주민 | 변호사·세월호 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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