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되었다. 그동안 북핵 등 여러 일이 있었다. 사드배치, 인사파동 등 불만스러운 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자면, 문재인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여러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그의 핵심측근들이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교훈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불통의 박근혜 정부와 비교되어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몰라도, 소통 등 대국민 정치는 그 어느 정부보다도 잘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대국회, 특히 야당에 대한 여의도정치에서는 문제가 많다. 단적으로 평가하자면, 대국민정치가 A학점이라면 대여의도정치는 C학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와 다당제라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협치와 연정이라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택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각료구성으로부터 여러 우호적인 정당들과 연정을 고민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보다는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는 대통령령 등 시행령에 의존하는 ‘시행령주의’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국회의 협조가 꼭 필요한 경우 협치보다는 여론에 의해 국회를 압박하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물론 문재인 정부와 야당 간의 관계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정당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승자독식의 정치방식에도 책임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다당제와 여소야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치식을 채택하기보다는 높은 지지에 기초해 과거식의 승자독식의 정치방식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지금처럼 인기가 높고 임기 초기에는 작동할지 모르지만 지속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국회의 임기가 2년 반 이상 남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안정적인 협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작지만 우호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으로부터 같은 뿌리에 기초해 있지만 치열한 경쟁관계인 국민의당, 촛불혁명의 일원이었던 바른정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협력 틀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북핵, 사드, 증세 등 여러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특히 임기 초기 이라크 파병이라는 복병을 만나 지지기반이 되어야 할 진보세력과 대립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세력 양쪽으로부터 샌드위치가 돼야 했던 노무현 정부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된다. 그러려면 사드배치, 증세 등 갈등적인 핵심의제들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정책적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다양한 행사방식 등 청와대 관련 이벤트의 ‘연출’과 메시지 전달방식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내공과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촛불혁명이 주장했던 적폐청산에는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들도 있지만 사드배치 철회와 같은 대립되는 것들도 있다. 이와 관련, 특히 주목할 것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댓글사건 등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거청산문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하에서 국정원 등 공안권력기관들이 보여준 행태는 근대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작태였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강력한 과거청산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 과거청산 등 대대적인 과거청산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인혁당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등 성과가 많았다. 그러나 댓글사건이 보여주듯이 국정원은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과거의 행태로 돌아가 불법적인 정치개입을 일상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학계대표로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약칭 진실위원회)에 직접 참여해 3년간 국정원 과거청산과 개혁작업을 주도했던 당사자로서 참담함과 부끄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노무현 정부의 과거청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것, 즉 어떻게 하면 과거청산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제도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구성상 이 같은 법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그 같은 법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권이 바뀌고 국회의 주도세력이 바뀌면 그 법을 다시 바꿔 원위치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법과 상관없이 불법적인 반민주적 개입을 할 수 있다. 사실 국정원 댓글사건은 국정원법이 이 같은 활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험 속에 그 답이 있다. 과거청산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최고의 과거청산은 과거청산 그 자체가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치세력이 집권하여 역사와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국민들이 다시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도록, 박정희 향수가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특히 민생을 잘 해결해 2007년 대선과 같이 “부패가 무능보다 낫다”며 보수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97년 대선에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김대중 대통렁을 찍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겪은 2017년 대선에서는 가난할수록 이명박을 찍었다.

따라서 민생파탄과 유례없는 양극화를 가져온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양극화 해소를 통해 헬조선을 벗어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헬조선이 계속되는 한 문재인 정부, 나아가 촛불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생이 최고의 과거청산이다.

<손호철 서강대교수·정치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