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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며 22일부터 27일까지 한시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영리화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재벌과 자본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삼는 의료 황폐화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의료영리화 정책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노동계의 파업이 범야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고, 최근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추진 방식이 민주주의의 절차와 본질적 내용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차 정치·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이 공공성 회복’ 등을 요구하는 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노동계의 이번 의료영리화 반대 파업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부가 하위법령인 시행규칙(보건복지부령)의 개정을 통해 비영리법인 병원들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비영리법인 병원의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이 왜 그렇게 중요하며, 어떻게 민주주의의 실체적 내용을 유린하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정부의 ‘부대사업 확대 방안’은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의료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고 관장하는 법률인 의료법 제49조에는 이 법률이 비영리법인 병원에 허용하는 7가지 부대사업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①의료인의 양성과 보수교육 ②의료에 관한 조사 및 연구 ③노인의료복지시설 운영 ④장례식장 운영 ⑤주차장 운영 ⑥의료정보시스템 개발 ⑦그밖에 일반음식점과 이·미용업 등 환자와 종사자의 편의를 위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업이 그것이다.

이번에 정부는 여행, 국제회의, 외국인환자 유치, 목욕장, 수영장, 종합체육시설, 건물임대 등의 사업을 새로운 부대사업으로 추가했다. 이런 부대사업들을 추가하려면 당연히 의료법 제49조를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법률 개정 대신에 의료법 제49조 ⑦항에서 일반음식점 등 관련 업종의 추가가 허용된 보건복지부령을 개정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부대사업을 확장한 것은 상위법령인 의료법을 무력화한 절차상의 위법이다. 새로 추가된 부대사업들이 규모와 성격 면에서 일반음식점 수준의 편의 제공을 훨씬 웃도는 대규모 영리사업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의 ‘영리자회사 설립 가이드라인’도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잘못된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회사는 병원과 외부 투자자들이 지분을 소유한 상법상 회사로서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영리기업이다. 이는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환자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내용상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과 다를 바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이 장차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영리화를 가속화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료법 개정을 회피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법은 비영리성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바, 영리적 내용은 반드시 의료법에 예외조항을 신설할 때라야 합법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행정지침인 가이드라인으로 법률개정을 대체해버렸다.

결국 쟁점이 되고 있는 두 가지 의료영리화 정책 모두 절차상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며, 내용상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기본인 실질적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무슨 절박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 멈추는 게 옳다. 어떤 사안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심각할 경우 국민으로 하여금 판단토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까지 서두를 일이 아니다. 관련 정보의 더 많은 확산과 공유를 바탕으로 충분한 정치사회적 논의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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