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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마디로 블랙 코미디다. 이명박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파문을 두고 하는 말이다. MB 정부는 6월2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 협정안을 즉석 안건으로 상정해 국민과 국회 몰래 통과시켰다. 이 사실이 알려져 국민과 야당이 강력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6월29일 4시에 서명식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론의 역풍을 의식해 협정 명칭에서 ‘군사’를 빼기도 했고, 주관 부처를 국방부에서 외교부로 옮기는 ‘꼼수’를 부렸다. 새누리당 역시 “국가 안보를 위한 외국과의 군사협력을 괜한 반일 감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여론을 반일 감정 정도로 치부했다.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그러자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사 저지를 다짐했고, 민주통합당도 강력한 대정부·대여 투쟁을 선포했다. 여론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새누리당 지도부는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협정 체결 연기를 요청했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서명식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명식 10분을 남겨두고 나온 발표였다. 당황한 일본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고,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숙원해온 미국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밟지 않은 MB 정부의 대국민 기만극이 빚은 외교적 재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협정 중단하라 ㅣ 출처:경향DB

이러한 해프닝의 중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과 일본 정부에 한·일 관계를 비롯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전문을 보면 한국의 일부 관료들은 독도와 과거사 문제, 그리고 동북아 신냉전 우려를 들어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던 MB의 의지는 대단히 강했다. 미국 및 일본과 손을 잡고 북한을 흡수통일하고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자해적인 사고가 강했던 탓이다. 일부 관계자의 문책을 넘어 대통령의 사과와 협정 추진 취소 발표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정부는 협정 체결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연기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는 국회에서 최소한의 보고 절차만 밟고 또 다시 협정 체결을 강행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고해준다. 당사자인 일본과 배후국인 미국의 압력을 ‘국가간의 약속’이라는 구실을 달고서 말이다. 그리고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 기회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릴 런던올림픽이 될 수도 있고, 만약 북한이 또 다시 로켓 발사나 핵실험을 하면 강력한 명분을 갖는 것으로 믿을 것이다. 국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의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져서는 안 될 까닭이다.

한·일 군사협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 산물이고, 한·일 군사협력은 일본 군사대국화 및 우경화를 반영한 것이자 이를 촉진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일 군사협정의 본질적인 의도는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고리로 삼아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려는 데 있다는 점에서, 이는 남북관계 파탄과 함께 동북아의 신냉전을 부채질하게 된다. 일본 군국주의와 냉전 체제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일본 군사대국화 및 신냉전을 야기할 악수를 두고 있는 것이야말로 MB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존재하고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및 일본과 손을 잡고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일 군사협정은 국가안보의 혹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혹을 다는 것이다. 대안은 분명하다. 단호하면서도 자제력을 갖춘 군사적 억제와 함께 능동적인 외교에 시동을 거는 것이다. MB 정부가 이럴 의지가 없다면, 남은 임기만이라도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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