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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안철수 교수 측에서 이른바 ‘아이젠하워 모델’에 따른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주지하듯이 2차 대전의 영웅이다.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자원을 총동원해 생사와 존망을 걸고 치른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으랴. 그런 그였기에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구애를 펼쳤다. 그 인기 덕분에 1948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이던 트루먼은 아이젠하워에게 대통령 후보직을 양보할 생각도 있었다. 최근에 공개된 그의 일기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후보가 되면, 자신은 기꺼이 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직접 했다고 한다. 트루먼의 발상도 놀랍지만, 어쨌든 아이젠하워란 인물이 누린 대중적 선망의 정도가 문자 그대로 족탈불급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국회 본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경향신문DB)


 흔히 시민대통령 콘셉트로 알려진 아이젠하워 모델에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엄청난 수준의 대중적 인기가 첫 번째다. 인기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는 차원이 아니다. 호감을 넘어 국가운영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담긴 인기다. 둘째는 공화당의 도움이다. 당시 공화당은 좌·우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1952년 선거에서 유력한 공화당 후보는 우파의 로버트 태프트였다. 이전의 두 번 선거에서 토머스 듀이를 당의 대선후보로 냈으나 패했던 좌파이기에 자파 후보를 낼 처지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고립주의자인 태프트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안을 물색했고, 듀이와 상원의원 롯지가 적극적으로 아이젠하워 영입에 나섰다.


셋째는 시민운동이다. ‘아이젠하워를 위한 시민 조직’이 전국적 차원에서 결성돼 ‘나와라 아이젠하워’ 운동(Draft Eisenhower movement)을 펼쳤다. 정치권이 일부 개입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발적인 시민들이 ‘시민 대통령’ 기치 아래 모여서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쳤다. 이런 세 가지 요인이 합쳐져서 아이젠하워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기만을 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대세를 장악한 것이 결코 아니다.


(경향신문DB)


안철수 교수가 누리는 인기는 우리 정치를 바꿔보자고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정치·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착한 성공’을 일궈낸 안 교수 개인에 대한 호감도 있지만 그만큼 답답한 현실과 무능한 정치에 대한 불만이 안철수현상을 만들어낸 기본 동력이다. 따라서 그의 등장과 실체를 무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안 교수의 입장에서도 성찰할 대목은 있다. 자신을 향한 이 거대한 열망을 만약 정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다면 ‘망가질’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는 선택이다. 정치적 선택은 호·불호를 넘어 피아를 나누게 한다. 정치의 숙명이다. 따라서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안 교수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면 이런 정치를 피할 수 없으니 먼저 이런 각오부터 해야 한다. 욕을 먹어도 하겠다는 것이 진짜 권력의지다.


또 아이젠하워가 시민운동의 후원과 당의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민운동은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민주당 내에 안 교수를 호명하고 지원할 수 있는 잠재적 인물이나 세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실제로 나설 명분이 없다. 당장 출마 선언도 없고, 나라를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이나 정책도 없다. 서민의 입장에서 정치가 달라질 것 같은 기대는 있으나, 그의 정치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림이 없다. 그렇다고 보수나 여권의 실정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데 누가 감히 그를 거명하면서 돕겠다고 나서겠는가. 안 교수가 아이젠하워 모델을 따르겠다고 한다면 ‘시민’만이 아니라 ‘정당’도 봐야 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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