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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bau100@empas.com
암탉이 20일 넘게 알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가 나오면 그 병아리들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죽어라고 어미를 쫓아다닌다. 새끼가 어미를 따라다니는 것은 거의 모든 동물의 공통된 속성이다. 하나의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대부분 신생국가들의 정치체제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식민지 모국을 흉내 내고 있다. 36년간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역시 당시 일본의 천황제 군국주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유교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왕정체제가 무너진 후 타의에 의해 식민지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의 통치체제는 거의 유일한 준거틀이었다. 사나운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과 같은 세계무대에서 단기간에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만큼 효율적인 체제는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변방의 왜소한 일본 사람들이 단기간에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주의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 그 증거라고 하겠다.
한반도에서 두 개의 나라를 일군 박정희와 김일성은 일본 군국주의의 최전성기에 청년기를 보내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겪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는 자진하여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 군국주의 체제 속에 들어가 이를 배웠고, 김일성은 일본 군국주의를 상대로 싸움을 하면서 이를 배웠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둘이 만들어낸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도서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삽화 (경향신문DB)
천황제 군국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천황의 신격화이다. 어느 누구도 체제의 우두머리에게 도전할 수 없다. 이 체제의 우두머리는 인격을 초월한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을 상대로 지속적인 신격화와 우상화 작업을 벌여야 한다. 둘째는 ‘군민일체화(君民一體化)’ 또는 ‘국체(國體)’의 완성이다. 우두머리 혼자 아무리 똑똑해도 소용이 없다. 국민들이 우두머리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효력이 있다. 이는 강력한 정치적 세뇌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국체’가 완성되면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국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개인인 내가 무슨 일을 하건 다 “대한민국 만세!”이고 “어버이 수령님께 감사드립니다!”로 표현한다.
세 번째는 군대 우선이다. 모든 힘은 강력한 군대에서 나온다. 강력한 군대만이 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보장하고 천황체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헌법을 가지고 있지만 군대만큼은 초법적으로 행동한다. 헌법을 유린한 쿠데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지금 적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법을 따지고 있을 새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북의 ‘선군정치’는 이를 교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네 번째는 ‘경제의 국가화’이다. 개인과 개별 기업이 경제활동을 벌이지만 모두 강력한 내셔널리즘의 (자기)통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일지라도 국체를 건드리거나 통치자의 비위를 거스르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정경유착이 너무도 단단해 그 속에 아무리 심각한 부정과 비리가 있다 해도 결코 잡아낼 수가 없다. 잡아내려는 행위 자체가 ‘국체’를 뒤흔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천황제 군국주의는 혈통을 중히 여긴다. ‘만세일계’ ‘백두산 가계’ ‘대를 이은 혁명대업의 완수’ 따위는 모두 혈통을 중심으로 천황체제를 이어가려는 수사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자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천황제가 어느 정도 희석되었지만 국민들 가슴속의 천황제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하다. 천황제는 단순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유사종교체제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올해에 있을 남한의 대선이 천황제의 법통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한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세력 간의 치열한 격돌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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