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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8일 교육부는 끝내 국정교과서를 공개했다. 국정교과서를 어떻게든 기정사실화하려는 속셈이다. 이는 국정교과서의 부당성을 규탄하며 국정화 강행이 가져올 혼란을 우려하는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국정화는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다. 역사 지식의 논쟁성, 해석의 다양성, 비판적 사고를 배운다는 역사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면 국정교과서는 그 자체로 ‘반교육적’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전쟁을 불사하면서 국정화에 앞장섰다. 이번에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라 불릴 만하다. 현대사 서술이 많이 줄었는데도, 유독 박정희 정부 시기는 분량을 크게 늘렸고, 박정희와 직접 관련된 서술이 매우 많으며 그의 공적을 곳곳에서 기록하였다. 사진까지 신경 써서 5·16 쿠데타 때의 군복을 입은 사진을 뺀 대신 산업현장에 선 그의 모습을 실었다.

이 책은 은밀하게 되살아난 교학사 역사교과서로 불릴 소지도 많다. 두 책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친일 문제에서 많이 다르다. 그러나 건국절 논리를 전면화한 ‘대한민국 수립’이란 용어, 건국 아버지로 이승만의 공적 부각하기, 친재벌 교과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성장일변도의 경제사, 냉전적 시각을 강화한 북한 서술 등은 매우 많이 닮았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과서라면서 정작 학생을 배려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교과서는 학생들이 처음 만나는 역사책이며, 풍부한 학습자료와 다양한 학습활동을 담은 수업 안내서여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맥락 없이 나열된 수많은 사실, 본문과 연계되지 않은 사진과 자료들, 조악한 편집 등으로 도대체 읽기가 힘들다.

터무니없는 부실 교과서이기도 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거의 똑같은 문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오류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이라 쓴 터무니없는 잘못을 비롯해 곳곳에서 사실의 오류가 확인된다.

편향과 부실은 예견된 재앙이다. ‘99.9%의 교과서가 편향되어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총리의 주장을 기억해보자.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거나,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던 대통령의 발언은 또 어떤가? 애초부터 원하는 대로 써줄 필자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신원을 철저히 감춰온 ‘복면집필자’ 31명 중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면집필자가 실제로 썼는지도 의문이다. 교과서라면 당연히 교육과정이나 편찬기준을 따라야 하는데, 이 책은 교육부가 법원의 판결을 받고서야 공개했던 편찬기준과 현저히 다르다. 그런데 그 편찬기준조차 애초에 만든 편찬기준과 또 달랐다. 더구나 공개 직전에 황급히 수정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누가 썼는지도 불분명한, 부실투성이 교과서. 은밀하게 되살아난 교학사 교과서이자,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선포한 교과서. 아니 교과서란 이름이 아까운 이 책을 전국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선생님들이 불복종운동을 선언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대도 거세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국정교과서 철회 운동에 나서고 있다. 학부모들도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요구하면서 교과서 구입 거부 운동을 공언하고, 교육청에서 학부모의 뜻을 존중하여 교과서를 개별구입하도록 제도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교육부가 국정화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내년 3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날 일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문제까지 감안하면, 국정화를 철회하지 않아 발생하는 혼란은 상상 그 이상이다.

국정화는 오직 한 사람, 박 대통령을 위한 일이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정부 기관과 공무원들이 공론과 민주적 절차를 부정하며 강행했다는 점은 2016년 가을 온 국민이 아프게 체험하는 사태와 본질적으로 같다. 이미 국정교과서는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했다. 국정교과서를 조건없이 폐기해야 옳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독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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