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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공포가 창궐하면서 세상이 어수선하다. 사회는 동요하고, 사람들은 공포 앞에서 하나가 된다. 아니 한 사회가 질병 앞에서 하나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공포, 다가오지 않는 실체, 병에 걸릴 확률은 막연한데 치사율은 확실해 보이는 전염병 앞에 이 사회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질병 재난에 대한 대처능력이 형편없다. 공포를 키우는 격이다. 국가가 위기 대처능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무심하다는 점은 이미 드러났다. 세월호는 그 비극적인 정점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후에 메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세월호는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죽어가는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죽음을 구조하지 못하는 국가를 성토했지만, 자신들은 이미 그 불행 앞에 비켜서 있음을 안다. 해서 세월호는 보편성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특수한 ‘사건’이었다. 어쩌면 조문하고 애도하는 문상객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하지만 메르스는 다르다. 이것은 벌어진 일이 아니라 벌어질 일이고, 어떤 불행한 이들에게 닥친 비극이 아니라, 언제 내게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다. 부자 동네 강남 주민들도 예외없이 공포에 떨게 만들고 걸리게도 하는 전염병. 이것이야말로 전염병이 갖는 평등함이다. 보편성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염병은 공공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메르스 발생 후 이른바 ‘영리병원들’의 의료체계는 무용지물임이 드러났다. 한국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그동안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에서 보듯 이미 해체되고 약화되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주목해야 할 첫 번째다.

14일 오전 메르스 관련 국가 지정 격리 병상이 있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주차장에 음압 격리 병실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음압 격리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 경향DB)


상업적이고 영리를 추구하는 사설병원들은 전염병 환자 공개 및 차단, 치료와 병상 제공, 나아가 병원 폐쇄를 당연히 꺼린다. 삼성서울병원은 확산의 두 번째 진원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병원 폐쇄나 병원 환자에 대한 전체적인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의료행위는 비즈니스 이상의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강제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하고, 공공의료 시스템과 공공병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메르스는 왜 공공의료 시스템이 유지돼야 하는지를 극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전염병이 아무리 보편적이고 공공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질병인 한, 그 안에는 계급적 지형이 있다.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퇴치 ‘거점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 병원의 기존 주요 환자들이었던 서민층 100명이 병상을 비워주고 쫓겨나고 있다는 사실. 흥미롭지 않은가. 평상시에는 돈 많고 시설 좋은, 이를테면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서울병원 같은 곳을 이용하던 부자들과 중산층들이, 결국 전염병 공포 앞에는 돈 많은 자본이 아닌 공공병원을 선호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면서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공병원 시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

질병은 설사 그것이 전염병일지라도, 결국 계급적인 성격을 가진다. 스스로 대처하고, 좋은 영양상태에다 병을 이겨내는 많은 ‘자원’을 가진 이들과 없는 이들은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모든 전염병이 그랬다. 전염병은 항상 계급적으로 닥쳤다. 극단적인 예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는 ‘흑사병’이다.

메르스 역시 그렇다. 평소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빈곤층 노약자들, 하루 노동을 잠시 멈추거나 노동 이후 푹 쉬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고위험군’이다. 예방용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 채 노동하고 거리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택시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 서비스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 쪽방동네 사람들. 질병의 계급적 측면이다. 전염병처럼 ‘고위험’ 질병의 경우, 그것은 사회적이다. 즉 계급적이다. 예방도 치료도 사망도. 전염병의 공공성을 확인하는 한편에 메르스의 계급적 지형이 놓여 있다. 진짜 공공성은 바로 그 지점까지 살피는 것일 것이다.


권영숙 |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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