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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7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이번 방한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이루어진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과 북한은 전쟁 직전과 같은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업인들과 만나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 등 세제 개혁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위기국면에서 불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그의 돌발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국내외 현안을 구분하지 않고, 참모진과 조율되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왔다. 북한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김정은이 자살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자들을 상대로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무안을 주었다. 통상적인 정상외교는 사전에 실무진에 의해 철저하게 조율된다. 회담 의제는 물론 발언 수위, 합의사항과 공동기자회견 내용이 조율된 후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이런 조율이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언제, 어디서나 불쑥불쑥 내던진다. 지난 6월 말,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없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들고나왔다. 철저하게 미국 내 지지세력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번 방한과정에서 그의 태도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스타일을 고려하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전에 회담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도 사업가적 협상에 능숙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국의 국익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만큼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다. 핵심적인 내용에서 합의를 이끌되 약간의 이견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친구 사이도 일방적인 추종만 존재한다면 진정한 우정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발언이나, 한·미 간의 작은 이견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발언 스타일은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만 그의 발언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자존은 대통령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국민 모두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필자는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을 처음 방문하였고, 2개월 후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 시에 다시 북한을 방문하였다. 당시 필자는 북한을 나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을 직접 방문했을 때 북한의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량을 볼 수 없는 평양의 도로, 수시로 정전이 되는 호텔, 도로를 오가는 초라한 행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과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서울이 북한과 얼마나 가까운지 알게 될 것이다. 서울에 트럼프타워가 있는 뉴욕 맨해튼만큼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문 대통령이 왜 그렇게 평화를 강조했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28일, 북한은 흥진호를 나포했다가 6일 만에 되돌려 보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방송을 통해 흥진호를 돌려보낸다고 알려왔다. 남북 간 아무런 소통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간 최소한의 연락채널이 필요하다는 점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5.5배 크기이다. 107억달러의 공사비가 투입되었다. 미국의 해외 주둔기지 중 최대·최고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이 비용의 94%를 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방한이 ‘백문불여일견’의 경험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호불호를 떠나 우리를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우리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외국인들이 반대시위를 한다면 유쾌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소규모 시위가 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넓은 이해를 바란다. 이 같은 시위가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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