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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지방분권·자치 강화라는 기본 방향까지 언급하며 정치권을 향해 개헌을 요구한 것은 대선 공약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 정국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에 회의가 든다. 개헌안에 담아야 할 내용은 많은데 가장 민감한 정부 형태에 대한 의견조차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지난 1월부터 개헌을 논의해왔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원칙에 겨우 공감했을 뿐이다. 대선이 끝나면서 개헌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현행 헌법으로도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순조롭게 정권교체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결과일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7개월 남짓한 기간에 여야 간 개헌안 합의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개헌만큼, 아니 어쩌면 개헌보다 더 개혁 효과가 큰 선거제도개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당의 득표수와 국회 의석수 간 비례성을 확보하자는 데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민의를 모아 독일과 유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해놓고 있다. 이런 선거제도 개편은 개헌 여부와 상관없이 실행해야 한다. 개헌은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선거제개혁 요구는 이미 꼭짓점에 이르렀다.

정당 간 의견도 어느 때보다 잘 모아진 상태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여야 4당은 이미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는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민정연대’를 꾸려 논의하고 있다. 어제는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도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적극 동참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선거제도를 고치는 것은 정당들이 고도로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정당 간 협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개헌 논의는 시간을 갖고 계속하더라도 정치권은 우선 선거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당은 지금부터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당론을 모을 필요가 있다. 시민이 원하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정치개혁의 요체는 선거제도개혁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권과 국회가 촛불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길이다. 대표성, 비례성, 책임성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다당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제를 더 미루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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