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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honortomeadows@gmail.com

김제동, 김미화 등이 ‘좌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서 사찰을 받았다. 청와대가 흥신소나 연예기획사처럼 국민들의 삶을 낱낱이 뒤져보는 정권, 이게 2012년 우리의 현주소다. 일단, 기분은 더럽다.

자, 청와대라고 해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마구 사찰해도 좋은 것일까? 대통령의 행위에 관한 것이니, 헌법을 좀 살펴보자.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로비에 헌법 10조가 새겨져 있다. I 출처:경향DB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공무원이라고 해서 함부로 감청하거나, 함부로 사생활을 낱낱이 엿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과도한 공무원 사찰도 일단은 잘못된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이 아니야?

이어지는 제18조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며 별도로 감청을 금지하고 있다. ‘핸펀’, 엿듣지 말란 말이야! 현 정부가 흔히 쓰는 ‘좌파’, 이건 헌법에는 없는 말이다. 게다가 ‘좌파 연예인’이라고 해서 함부로 사찰해도 좋다는 건, 헌법적 개념 상실이다. 이어지는 제19조, 모든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청와대가 ‘좌파 연예인’이라는 명목으로 김제동, 김미화 등 일반인들을 사찰한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그런데 헌법 66조 2항은 대통령에게 헌법을 수호하라고 말하고 있다. 즉 헌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이 벌을 주시오”, 이런 얘기다. 선서까지 시킨다. 만약 이 헌법 수호자가 나서서 헌법을 어기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다른 사람도 어겼잖아, 이런다면? 대략 난감하다. 미안하지만, 전임자의 공무원 사찰이라는 오류가 현재의 긴박한 헌법 위반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제일 쉬운 해법은 헌법의 수호자가 크게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헌법 위반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거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 정권에서도 뭔가 사찰을 했으니까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는 말, 이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회만 닿으면 헌법을 어기겠다는 말 아닌가? 국가 기구를 정적을 제거하거나, 듣기 싫은 입 막으려고 사사로이 사용하는 것, 이건 우파도, 보수도 아니고, 그냥 헌법 위반 대통령일 뿐이다.

원칙적으로는 국민직접행동을 통해서 직접 대통령이 사퇴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4·19의 경우가 그랬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주 피곤한 일이다. 또 한 가지는 헌법 65조가 규정하는 대통령 탄핵, 여기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숫자가 필요하다. 이건 정치의 영역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현시점, 이번 총선이 분기점이다. 과연 국회가 스스로 이 헌정적 위기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을까? 지금 시험대에 선 것은 대통령과 여당의 운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헌법 그 자체이다. 국회가 이 문제를 시정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이 직접 나서게 된다.

만약, 정말 만약, 이번 총선에서 야당 쪽 국회의원이 3분의 2를 넘어서면, 헌법 위반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자진사퇴와 탄핵, 두 가지 길밖에 안 남게 된다. 대통령이 헌법을 습관적으로 어길 때, 이걸 시정할 1차적 권한은 국회에 부여되어 있다.

자, 어지간하시면, 대통령이 직접 크게 사죄하고, 책임질 사람 책임지게 하고, 헌정 질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서로 편하지 않은가? 정치인, 연예인, 요렇게 사찰에 재미 붙여가면서 일반인 사찰이 일상화되면, 우리의 헌법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냥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버티기만 하면, 그나마 얼마 안 남은 정권, 그냥 무너진다. 차분차분, 생각 좀 해 보시라. 헌법 위반, 이거 중대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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