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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문도리코

opinionX 2012. 4. 4. 22:30

손동우 논설위원

어떤 제품의 선점효과가 크거나 성능이 탁월해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될 경우 그 특정 브랜드는 유사한 기능을 지닌 상품 전반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바뀌게 된다. 요컨대 압도적인 특수성은 때때로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소주의 종류가 다양해져 애주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하지만 진로소주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진로는 곧 소주였다. 일제시대 한반도에 상륙한 일본의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味の素)’는 삽시간에 조선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아지노모도는 1950년대 중반 최초의 국산 조미료인 ‘미원’이 출시된 이후에도 한동안 화학조미료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군림했다.

1960년 선보인 세계 최초의 건식 복사기 ‘제록스’는 본사가 있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석권함으로써 복사기 그 자체를 뜻하게 됐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제록스하다’는 ‘복사하다’의 동의어로 통용됐다. 제록스가 누렸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지금은 토종 업체인 신도리코가 복사기뿐만 아니라 팩시밀리와 프린터 등 사무기기 및 영상기기 생산·판매 업체로서도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신도리코 복사기가 이번 총선에 출마한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부산 사하갑) 덕분에 뜻밖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모양이다. 박사·석사학위 논문을 비롯해 모두 7건의 논문이 ‘표절을 훨씬 뛰어넘는 복사 수준’이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문 후보에게 누리꾼들이 ‘문도리코’라는 별명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후보의 ‘복사 자료’가 된 김모씨의 논문이 부산 동아대 김모 교수의 논문을 80%가량 베낀 것으로 새로이 밝혀져 ‘3단 표절’이라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문 후보가 ‘스리쿠션’으로 표절했으니 혹시 당구선수 출신 아니냐”고 조롱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가 박근혜 선대위원장으로 부터 공천장을 받고 있다. I 출처:경향DB


문 후보는 결승전에서 통쾌한 돌려차기로 승리했고, 그 장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해 여름을 시원하게 했던 상큼한 돌려차기는 어디에 가고, 음습한 ‘돌려 베끼기’만 남아 있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깨끗이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것만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스포츠맨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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