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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총선공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인권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 지난 주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희망텐트와 희망광장, 그리고 제주도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이다. 탈북자들의 경우 강제송환 시 생명이 위협받는 등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해결을 위해 진행됐던 희망버스에 이어 쌍용차 등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린 희망텐트와 희망광장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인권의 현주소를 증언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정마을은 동북아의 무력경쟁과 거대한 국가의 공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평화를 지키려는 한 작은 마을의 힘없는 주민들의 인권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I 출처 : 경향 DB
주목할 것은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냉전적 보수언론과 냉전적 보수세력은 희망텐트와 강정마을 문제를 아예 무시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반대로 희망광장과 강정마을에 비분강개하고 있는 진보세력은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세력은 탈북자의 인권침해에 분노하고 있고 일부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21명이 목숨을 끊거나 목숨을 잃은 쌍용차 문제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정작 우리들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이하기만 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소한 한국의 보수세력은 원래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실 언제 그들이 유신과 전두환 정권 등의 인권침해에 저항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이들의 역사 그 자체가 사실상 ‘인권억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 왔고 삼아야 하는 진보다. 사실 진보는 대부분 북한의 3대 세습 등 유독 북한의 인권침해에는 남북평화 등을 이유로 침묵해 왔고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탈북자 강제소환에 대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중국을 공개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현명한 외교정책은 아니라는 점에서 냉전적 보수세력처럼 중국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최선인가는 논쟁이 가능하다. 또 탈북의 핵심에는 최소의 생존도 어려운 북한의 경제사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탈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의 냉전적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나아가 북한이 국방비를 민생에 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반도 긴장완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나가야 한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탈북자 문제의 근본원인은 자기 백성을 먹여살리지 못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게 하는 북한당국에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북한 국민의 굶주림을 완화해주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탈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인가?
그러나 탈북자 문제에 대해 진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과연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확대와 평화체제의 체결을 주장하는 것뿐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탈북자 강제송환에 반대해 단식을 하고 집회를 열고 있는 박선영 의원과 차인표씨를 바라보며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한 그들의 침묵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며 동참하고 싶어지는 것은 내가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하기 때문일까? 탈북자들이, 나아가 국민들이 “당신들이 진보를 자처하며 탈북자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이제 진보도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탈북자와 북한 인권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탈북자 강제송환과 희망광장, 강정마을을 바라보며 마르크스의 좌우명과 괴테의 글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인간적인 것 쳐놓고 우리와 무관한 것은 없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살아 있는 것은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