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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나는 마흔두 살이다. 사십대 중반의 길목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뀐 지가 어느덧 2년이다 보니 불혹이라는 말도 예사롭지 않게 이해된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세상 풍파에 연연하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다. 사실 이 말은 무엇에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마흔둘이면 자타공인 아재다.

그런데 오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에 귀국한 동년배 친구는 나보다 훨씬 젊게 산다. 친구는 내게는 예전이었던 ‘사십대의 시작’이 기대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고자 제주 올레길을 무작정 걸을 예정이라 했다. 느낌이 좋으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도보로 올라오겠단다. 내가 국토대장정은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우리 나이쯤 되면’이라는 추임새를 멈추지 않자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나, 한국 나이 안 써.”

나는 1978년 9월생이고 친구는 11월생인데 한 명은 이미 사십대의 삶에 익숙해져서 느낌 운운하는 결정을 꺼리고 고작 2개월 차이인 다른 한 명은 인생을 자신이 만들면서 살아가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 친구의 정신상태가 남달라서가 아니라, 그가 태어난 세월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40세1개월, 친구는 자신의 나이를 살아온 기간만큼 계산했고 그 숫자에 맞춰 살았다. 새해가 되어도 40세2개월에 불과하니 스스로를 삼십 대라고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1978년에 태어났다면 동시에 새해 첫날부터 마흔둘이 되는 이상한 전통에 길들여진 나는, 몇년 후에는 “내일모레면 반백년을 살았으니”라고 말할 태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숫자가 곧 자신이더라. 한국식 나이로 살다 보니 너무 빨리 늙는다. “곧 마흔이네”라는 말을 한국 나이 서른여덟이 되는 해의 첫날부터 했었다. 진짜 나이는 36세4개월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삼십대의 정점에 있을 시기였지만 8이라는 숫자의 무게감 때문에 스스로를 사십에 밀착시켜 이해했다. 26개월 군복무를 마쳤을 때가 고작 21세8개월이었는데, 왜 그렇게 애늙은이 흉내를 내며 학교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 나이는 34세7개월에 불과했는데, 서른여섯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참으로 두려움이 많았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 나이’는 사라져야 한다. 동양에서는 숫자 0의 개념이 달라서 나이를 다르게 계산했다는 설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이 전통을 무시했기에 이를 폐기했겠는가. 찬성론자들 중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1세가 된다’는 너무 진지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사가 곧 인권투쟁의 시간이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재미난 것은 원래 나이보다 ‘더’ 셈하는 법을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이 어리면 사람 무시하는 사회에서 하루빨리 ‘높은 숫자’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학생다움’의 규율에 짓눌린 이들에게 ‘이십대’는 자유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2000년 12월에 태어난 이들에게 내일은 18세1개월이 아니라, 청소년보호법의 대상에서 벗어나 음주와 흡연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만 19세, 아니 스무 살이다. 스물이 되고 싶었던 간절함 덕택에 당연히 사십도 오십도 빨리 된다. 나이가 어리면 무시당하는 세상에 적응하고자 우리는 다 함께 ‘더’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 셈법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제 갓 사십대에 접어든 팔팔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인 내일이 되더라도 마흔두 살이 아닌 40세4개월로 스스로를 바라볼 생각이다. 새로운 10년을 기념하는 여행을 떠날 채비나 해야겠다.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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