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중국에서 대학생들이 잡혀가고 있다. 대낮에 그것도 학교에서.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항하는 학생을 강압적으로 연행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37조는 중국공민은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이 없이는 체포되지 않고, 불법 구금 및 그 밖의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몇 달째 찾아 나서고 있지만 소식이 없다. 문명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명백한 불법체포이고 인권침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껏 이렇게 불법 연행된 학생과 노동자가 무려 서른여덟 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우주선을 날려 보낸 2019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출발은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그중에서도 중국 남부 광둥성은 세계 유명기업들의 공장들이 많은 곳이다. 지난해 봄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제이식과기유한공사라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자주적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그간 공장에서 자행되어온 전근대적인 노동관행(구타, 강제벌칙 등)의 폐지 등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들보다 한발 먼저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사 노조를 만들었고,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는 강제로 해고됐고, 회사는 용역직원을 통해 이들의 출근길을 막아섰다. 일부는 공안에 체포되기도 했다. 중국 내 상급노동조합도 이들을 외면했다. 그때 고립무원의 노동자들에게 대학생들이 찾아왔다.
베이징대학, 중국인민대학, 난징대학 등 중국의 유명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연구회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은 제이식 노동자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여름방학 때에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직접 광둥성 선전시에 찾아와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했다. 중국어로 번역된 <전태일평전> <한국노동계급의 형성>을 필독서로 읽고, 영화 <변호인> <1987> 등을 보았다는 이들은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학생들의 활동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여론의 관심이 점점 커져가자 중국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공산당 이외에 어떠한 전국조직도 허용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먼 광둥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대학생들의 활동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국 노동자와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베이징대학은 불법연행에 항의하기는커녕 재학생들에게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며, 법에 도전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경고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11월 미국의 유명 언어학자인 놈 촘스키를 비롯한 30여명의 석학들이 중국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에 반대하며 중국 정부가 후원하는 마르크시즘 콘퍼런스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언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베이징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학생이 학교 앞에서 사복 차림의 남성들에게 끌려간 이후 연말연시 한 달 사이에 무려 8명의 학생이 추가로 연행되었다. 베이징대학, 중국인민대학, 베이징어언대학의 마르크스주의 학회는 모두 강제로 문을 닫았다.
헌법 제1조에서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선언한 중국 정부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와 이들과 연대했던 대학생을 탄압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정부의 탄압이 극심한 상황에서 남은 사람들은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동아시아국제연대’에는 끌려간 베이징대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진실의 햇빛이 결국 거짓의 장막을 벗겨내는 것처럼, 야만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세계 시민들의 눈이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일반 칼럼 >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선]스타벅스에 위로받는 이상한 여행 (0) | 2019.01.28 |
---|---|
[시선]타인을 위한 모성 (0) | 2019.01.21 |
[시선]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0) | 2019.01.07 |
[시선]“나, 한국 나이 안 써” (0) | 2018.12.31 |
[시선]매뉴얼 천국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