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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16주 동안 시간이 구속된다. 겨우 60만~70만원의 급여를 받는 한 과목만 담당할지라도 거의 반년은 운신의 폭이 제한되기에 다른 스케줄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다음 학기에도 강의가 지속되는지를 제때라도 알려주면 좋겠지만, 12년간 12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시스템을 경험한 적은 없다. 강사는 일방적인 통보를 마냥 기다린다. 왜? 대학은 강사를 그렇게 대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제 비루한 강사 인생이 달라진다. 강사법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 원래부터 교원의 역할을 했던 사람에게 교원의 지위를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법이니 그간 강사들이 무슨 신세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동네북 신세의 역사가 긴 만큼, 강사법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빈민구제 수준에 불과하다. 6개월마다의 고민이 1년 단위로 바뀐다고 불안이 사라지겠는가. 두 과목을 배정받아 고작 연봉 1000만원이 보장된다고 삶이 안정적으로 변하겠는가. 게다가 공개채용이라니, 귀찮아질 일만 생겼다. 교원 신분인 만큼 구속은 얼마나 심할까. 각종 행사나 회의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있을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하지만 거적때기 입장에서는 천지개벽 수준이다.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던 퇴직금이라니! 12년 전부터 보장되었다면 나는 얼마를 더 벌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웃음꽃 가득이다. 건강보험 보장은 꿈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랄까. 지금껏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매달 20만원 넘게 납부하며 살았는데, 12년 전부터 보장되었다면 얼마나 아꼈을까 하는 억울함도 든다. 그러니 강사법은 진전이다. 그 보폭이 크진 않았지만, 그 한걸음이 가능하기까지도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이를 이해한다면 결실이 미약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다. 이후에 발생할 이상한 일을 억지로 상상하는 건 무례다. 강사법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현재의 지옥을 어떻게든 뒤틀어보겠다는 시도만으로도 의의는 크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하자는 제안을 대학은 그대로 따를 생각이 없나 보다. 강사에게 나가는 돈을 가장 아깝다고 생각한 대학의 역사답다. 강사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늘리는 건 자본의 논리에 진격하는 대학에서 이미 있었던 일이니 놀랍지 않다. 우려스러운 건 일부 교수들의 강사법 반대 논리다. 교수의 강의시수가 늘어나는 걸 우려해서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다만 자신들 소싯적 무용담의 소재로 시간강사 경험을 말하기 좋아한 사람들 딱 그 수준이다. 강의기간을 1년 이상 보장하고 공개채용으로 강사를 선발하면 경력이 없는 이들이 가르칠 기회를 얻지 못한단다. 이제야 학문 후속세대의 앞길을 걱정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 그 안타까움이 왜 누군가의 기본권 문제와 함께 다뤄져야 하는지 의아하다. 노동자의 해고가 경직되면 청년의 취업기회가 박탈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학문생태계 타령은 진짜 너무했다. 강사들의 현재 상황이 생태계의 수준인데, 강사를 ‘교수가 되기 전에 몇년 가볍게 하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알 턱이 있겠는가.

쓸데없는 걱정 말고 교수들은 자신들이 공개채용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길 바란다. 강사들로부터 늘 문안인사를 받는 자라면 스스로가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살았는지를 성찰하고 채용에 개입하지 마라. 공동체 운운하면서 강사들에게 학과 MT에 오라고 권한 바가 있는 자, “강의 줄 터이니”라는 말을 하면서 다른 의무를 강요한 적 있는 자들은 고개를 숙여라. 당신은 ‘두 과목을 일년 보장해 준다면서’ 노예를 선발하지 않겠는가. 어이쿠, 과연 어떤 교수가 이런 기준에서 자유로울까? 그냥 최저기준만 정하고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 교수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학문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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