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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시선]서방예의지국

opinionX 2018. 11. 26. 11:40

토론토로 이민을 와서 큰아이는 한국에서와 같은 4학년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청각장애아 특수반이 있는 학교였다. 그 반에는 토론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이 6~7명 있었고, 교사로는 담임과 부담임 두 분이 계셨다. 선생님들은 청각장애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수업을 진행했다. 특정 과목에서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다 싶으면 아이들을 비장애아 교실로 보냈다. 우리 아이는 수학을 시작으로 메인 스트림에서 공부하는 과목을 차츰 늘려나갔다. 고교에 가서는 모든 과목을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공부도 공부지만, 이 시스템은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애아와 비장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하고 또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특수학교를 따로 만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 사이에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접하게 하다 보니 비장애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와 같은 ‘다름’을 유별나게 여기지 않는다. 새로 이민을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과 이민자는 때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이나 언어가 불편한 사람일 따름이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교육을 줄기차게 받다 보니, 장애인이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따위의 감정이 스며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인천 한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10대 중학생을 추락 직전 집단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중학생 A군 등 4명이 16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자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가 학교에 간 지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담임 선생님이 아이 편에 편지를 보내왔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우리더러 학교에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다음날 바로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아이의 나쁜 버릇에 대해 이야기했다. 귓속말하기와 소리 지르기.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옆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버릇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어도 고쳐지지 않으니 급기야 부모를 부른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엄하게 하는지, 우리는 크게 야단을 맞는 학생처럼 눈물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아이에게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제는 안 그래요”를 되뇌었다. 그런 ‘가정교육’을 1년쯤 지속했을 것이다. 아이는 버릇을 고쳤다.

두 아이를 토론토의 학교에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학교는 공동체(사회) 생활이 요구하는 매너와 예의 교육을 어릴 적부터 정교하고 철저하게 시킨다. 마치 ‘서방예의지국’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예의 교육을 공부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마다 이방인 20만~30만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의 나라이다 보니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매너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이다. 귓속말하기 같은 작은 버릇 하나를 두고도 부모를 호출할 정도이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같은 것은 당연히 범죄 수준으로 다스린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중학생 아이가 집단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참담한 뉴스를 보았다. 인구절벽에 맞닥뜨린 한국은 싫든 좋든 이민자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올해로 200만명을 넘어섰다니 하는 말이다. 중학생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어린 당사자들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학교고 언론이고 부모고 어른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해서 벌어진 일이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도 ‘우리’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한 바 없으니, 이런 문제는 필연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름’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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