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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 식구. 다섯 식구가 졸졸 자전거를 타고 나락 베는 들판을 달린다. 다섯 살 막내가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를 타면서, 시작된 풍경이다. 아이들이 요즘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자전거 앞뒤로 바구니 같은 자전거 의자를 달고, 한 자전거에 셋이서 타고 다니기도 했다. 이제 큰아이가 4학년.

가끔씩 글을 올리는 ‘봄이네 살림’ 블로그에서 지금껏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은 “시골에서 아이와 함께 살기”라는 글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날마다 적어 두고 싶은 일들이 꽤 많아서, 아이들 이야기를 자주 썼다. 십 년 넘게 시골에서 살다 보니, 여기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이 뭐 특별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쓰는 것이 확 줄었지만.

세 아이와 시골 살림을 하면서 아직까지는 큰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게다가 경남은 일 잘하는 김경수 도지사 덕분에 고등학교 무상교육도 잘 이루어질 테니,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혹시 생길지 모르는 큰돈 들어갈 일, 이를테면 대학 등록금이나 독립해서 방을 얻는 것 같은 일에 대해서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틈날 때마다 하고 있다. 몇 해가 지난다 해도 돈을 들여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는 일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농사도 그렇고,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도, 그저 지금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 말고는,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하지도 않는다. 욕심 같아서는 씨 뿌리고, 모내기하고, 논에 김매고, 나락 베고 하는 큰일 있을 때만이라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같이 일하면 좋겠다 싶지만, 그런 것도 정작 일이 닥쳤을 때는 쉽지 않다.어쨌거나 무언가를 더 가르치지 못해서 불안한 것보다는, 지금까지 늘 아침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것, 잠자리에 들 때 옆에 있다는 것. 서로에 대해 꽤 잘 아는 식구로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얼마 전에 <삼총사>를 읽은 큰아이는 나를 두고 셋 가운데 포르투스를 닮았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말이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기 때문이라나? 하…). 가까이에 사는 내 또래 부모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들이 아무리 바빠도 집에서 아이들과 살을 비비고 지내는 시간이 많다.

십 년 전, 배 속에 첫아이가 들어섰다는 걸 알고, 곧바로 시골로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서울에서 아이와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우리 부부는 오래 이야기하지 않고도 우리한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시골에서 살아 온 살림살이가 요란스럽고, 토닥대고, 우왕좌왕이었던 많은 순간에도 그 결정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큰아이는 서너 살 무렵, 서울에 갔던 어느 날 “길에서 고춧가루 바람이 불어”라고도 하고, 아파트에 가서는 “발밑에 사람이 있어? 천장 위에도?” 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4학년이 된 이제는 제법 서울과 또 가까운 지방 도시들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구별하는 정도가 되었지만, 지금까지는 시골에서 살겠다 한다.

아이들과 자꾸 자전거를 타려는 것은 나와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걸어서 어디를 다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골이야말로 문 앞에서 문 앞까지 차를 타고 다니는 문화가 되어버렸으니까. 걷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길은 점점 자동차한테만 좋은 꼴로 바뀌고, 아이들은 더 걷기가 어렵다. 아마도 그래서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걸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이겠지. 조금만 익숙해지면, 자기들끼리도 제법 멀리까지 다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식구는 조금 더 날이 추워지면, 함께 산에 올라가 잔가지를 주워 모으고, 낙엽 썩은 것을 담아 올 것이다. 그걸로 겨우내 구들방에 불을 넣고, 밭 한쪽에 거름을 넣고. 그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보내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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