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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류에 남겨진 김윤덕이라는 사람이 있다.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 남하리에서 1926년 7월에 태어난 이 사람은 태어나고 무려 10년이 지난 후인 1936년 4월에 출생신고가 되었다. 6남매 가운데 장남이었는데, 첫째부터 셋째까지 위로 3명은 넷째가 태어난 해인 1936년에 함께 출생신고가 되었다. 이후 계속 같은 주소지에서 살다가 1956년 10월17일 태어난 장소와 같은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사실은 30년이 지난 1990년 9월경 신고됐다.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매번 늦었던 이 사람은 최소한 기록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망한 사람이다.

사할린에도 김윤덕이 있다. 

홋카이도보다 조금 더 북쪽에서 일본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섬이 바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사할린이다. 사할린의 김윤덕은 한때 최대 탄광도시 중 하나였던 시네고르스크의 외곽 낡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90세가 넘은 할아버지다. 북쪽으로는 초례봉이 버티고 남쪽으로는 금호강이 휘감아 도는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 남하리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강제징용 통지서를 보고 6남매 중 장남인 자신이 대신 징용을 가겠노라고 우겨 고향을 떠났다. 부산과 일본을 거쳐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사할린의 탄광에 도착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갔지만 조금만 지나면 부모님과 동생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하고 조선은 마침내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사할린의 김윤덕이 강제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사이 경북 경산 출신 조선인 김윤덕은 일본, 무국적, 소련을 거쳐 러시아 국민이 되었다. 그렇게 사할린의 김윤덕은 잊혀져갔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시작한 1990년대, 사할린의 김윤덕은 극적으로 고향의 가족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에 잠시 입국해 그토록 고대하던 노모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향으로 영구 귀국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이 아팠던 아내와 러시아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두고 혼자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할린에 남아 있는 동안 한국의 노모와 형제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 연락이 끊겼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경북 경산군 하양읍 남하리에서 1926년에 태어나 1956년 사망한 김윤덕과 같은 장소에서 태어나 아버지 대신 징용에 끌려간 뒤 지금까지 러시아 사할린에서 살고 있는 김윤덕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서로 만나 가족으로 재회를 했다. 수십년 시간을 지나도 가족의 연은 지울 수도 속일 수도 없는 것이다. 혈육이 서로를 알아보았는데 그 이상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

김윤덕 어르신은 얼마 전 잘못 사망신고된 국내의 기록을 고쳐달라는 신청을 대구가정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은 기록상 서로 다른 “두 명의 김윤덕”이 동일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추가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내 살아온 사할린의 김윤덕은 이제 서류에 기록된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사람임을 밝혀야 한다. 올해는 일본 제국주의에 끌려와야 했던 사할린 동포들의 강제징용 80주년이다. 사할린의 김윤덕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제삿날이라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사할린 김윤덕 어르신의 간절한 바람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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