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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시선]BTS 뉴욕정담

opinionX 2018. 10. 1. 16:19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지난 추석 즈음 뉴욕 둘째 누나 집에서 우리 형제들이 모였다. 뉴욕에서 모두가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우리는 누나 집 거실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예전과 달리 한국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즈음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잠깐 언급되었으나 그것은 내가 꺼낸 다른 화제에 바로 밀렸다.

“BTS(방탄소년단)가 유엔에서 연설하러 뉴욕에 온대요. SNS 보니까 그날 맨해튼에 차 갖고 나가지 말라던데요. 걔들이 가는 곳곳에 아미가 진을 칠 거라서 길이 더 막힌다고.” 아미가 BTS 팬클럽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미가 뭐야?”라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결혼식장이며 식당을 오가는 자동차 안에서 BTS의 북미 인기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하던 중에 아미를 이미 설명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토론토 옆 도시 해밀턴에서 세 차례 공연하며 암표가 수천달러에 거래된다. 다소 침체된 도시 해밀턴에서는 BTS 공연으로 “도시 경제가 반짝 살아난다”며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놀라워했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에 산 지 28년 된 둘째 자형은 BTS 소식에 밝았다. “요즘 BTS 노래가 이곳 라디오에 자주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아? ‘강남스타일’이 한창 인기 있을 때도 그렇지 않았거든.” 자형은 ROTC 장교 출신이어서 그런지 ‘아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아미가 진짜 군대처럼 편제되어 있대. 미국 소도시마다 소대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지. 그 소대원들이 자기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맡아서, BTS 음악을 틀어달라고 계속 공략한다는 거야. 그 때문에 요즘 라디오에서 BTS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는 거고.” 하긴 토론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BTS 노래가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그렇게 풀렸다. 싸이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북미 어느 도시건 간에 BTS 공연장 앞에서 팬들이 하루 이틀 노숙을 하며 공연을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자 60년대 학번 큰 자형이 말했다. “예전 비틀스가 미국에 처음 들어올 때하고 똑같네.”

BTS 이야기는 뜻밖에도 대학생인 우리 아이들이나 30대 조카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미의 주축 세력은 ‘강남스타일’이 크게 넓힌 북미 케이팝 영토에 새로 진입한 어린 팬들이어서, 기존 케이팝 팬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2010~2011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로 북미에 본격 상륙한 케이팝은 주로 ‘SM’ ‘YG’ ‘JYP’ 3대 기획사 계보로 이어졌다. 팬들도 그 계보를 충실히 따라갔다.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조카나 우리 아이들은 바로 그 팬층에 속해 있다. 그 전통 팬들이 보기에, BTS의 주력 팬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신세대’ 혹은 ‘신인류’이다. 그들은 아미가 “조금 극성맞다”고 평한다.

조카 한 명이 집안 어른들한테 남자 친구를 인사시키겠다며 백인 청년을 누나 집에 오게 했다. 그에게 내 형이 질문을 했다. “두 유 노 방탄소년단?” 진짜 궁금해서 그랬는지, 질문거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몇 년 전 미국 고위 관리와의 기자회견장에서 난데없이 “두 유 노 싸이?”라고 했다는 한국 특파원을 패러디한 것인지, 본인 외에는 그 질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내 형의 질문은 그 자리에 모인 젊은 세대에게 빈축을 샀다. “그런 질문을 왜 해요?” 그런 질문인데도 인사하러 온 청년은 성실하게 답했다. “압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한마디 더 했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최대 이슈는 BTS였다. 마침 북미 투어 중인 데다 유엔 연설이 예정되어 있던 뉴욕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북미에서의 BTS 인기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만나 나눈 대화 내용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위 선양’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이들을 능가하는 한국인은 단군 이래 없었지 싶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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