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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자. 이들은 아이가 아니라 요즘 부모들의 인성을 탓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거나 들었던 누군가의 추잡스러운 짓을 덧붙인 다음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부터 생각하라’면서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누구도 식당에서 기저귀를 가는 부모를 두둔하지 않는다. 카페를 뛰어다니게끔 아이를 방치한 부모를 이해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도덕 준수에 예외가 없음은 당연한 것이니 누구든지 몰상식을 접하면 불편하다. 문제의 초점은 그럴 만한 이유의 유무가 아니다. ‘어떤’ 인간 때문에 모두가 도매금으로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정당할까? 사람에게 예의범절을 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몇 번 그러지 못함을 증거 삼아 그럴 만한 집단 전체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배제시킨다는 발상은 전혀 사회적이지 않다. 자꾸만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는 헌법 제23조 1항을 들먹이며 가게 주인의 적법한 권리라고 하는데 이들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23조 2항은 외면한다.

담배 피우는 행동을 통제하는 노스모킹존이 있었지만 흡연이 유력시되는 사람들을 미리 공간에서 통제한 역사는 없었다. 요즘 ‘카공족’(카페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면서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사람을 원천 차단하자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들 중에는 어제 사용한 종이컵을 다시 갖고 와 슬며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경우도 있다. 4인 테이블 하나에 몇 시간을 죽치고 있으니 차라리 취업 준비생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카페에 들어오지 않게 하면 장사가 더 잘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편안히 수다를 떨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그리할 수 없다. 기껏 해봐야 ‘스터디 금지’라고 적어 놓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다른 기준을 자꾸 적용한다. 설상가상, ‘애완동물 출입금지가 문제없는 것처럼 노키즈존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사람을 개로 취급하는 공포스러운 논리도 있다. 내 권리의 침해에 분노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 표출방식이 사회적 가치와 동떨어져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속이 터져도 그러면 안된다는 자제력의 커짐이 곧 문명의 역사다. 이를 이어가는 건 우리에게 의무이지 선택사항이 아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외국의 경우를 들먹이면서 노키즈존을 차별과 혐오의 맥락에 연결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껏 존재했던 누구나 알 만한 공간의 제약이었다면 애초에 논쟁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예술의전당에 아이를 못 들어가게 했다고 화내는 부모는 없다. 한눈에 보아도 성인들만의 공간처럼 보이는 고급 식당에서 굳이 유모차를 억지로 끌고 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부모는 없다. 갔다 한들 낯선 기운이 부담스러워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이 통제를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합의된 충분히 필요한 특정 공간의 제약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렇게 아이가 발을 딛지 못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으니 수긍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의 노키즈존은 다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산책을 하던 부모가 잠깐 쉬기 위해 들른 평범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구입한 다른 사람의 (개념도 모호한) 조용히 있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전박대를 당하는 황당함이 과연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할까? 파스타와 돈가스를 먹으러 가면서 ‘혹시나’를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어찌 좋은 사회일까? 우려스러운 점은 이미 상당수가 노키즈존에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동네 서점을 가면서도, 관광지에서 팥빙수 하나를 먹기 전에도 혹시 노키즈존이 아닌지를 확인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것이 타인을 배려하겠다는 사람들의 선한 행동인지, 아니면 눈곱만큼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악한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자기방어인지 따져볼 일이다.

<오찬호 작가·<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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