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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피고인 이재용의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다. 그는 지난해 8월 뇌물과 횡령, 재산국외도피 등 혐의가 일부 인정되어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불복해 항소심 재판을 받아왔다. 변호인과 특별검사 사이에 법리 다툼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피고인의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 결심 공판을 받기 위해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재용 측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 승마지원 등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수십억원을 제공한 것은 정당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고, 셋째 아들이었던 이건희 회장과 달리 자신은 외아들이며 삼성은 다른 기업과 달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 않아 경영권이 당연히 승계될 것이라 부정한 청탁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비정상적인 합병절차에 대해서는 두 회사 사장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이 모두 결정해 ‘모르는 일’이라 선을 그었다.

뻔뻔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재용이 가장 큰 영향력을 보유한 제일모직과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삼성물산의 비정상적인 합병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도 이재용 본인이다. 상속세를 회피하고 위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려고 한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변명이 담고 있는 유일한 진실은 ‘이재용에게 경영권이 승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왕국 내에서 무조건 관철되어야 하는 절대명제였다는 것이다.

판결 선고를 앞두고 국내외 경제인들과 경제단체에서 대기업 총수의 장기간 부재로 인한 경영 공백을 걱정하며 선처를 바라는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몇몇 언론에서도 이런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이재용 본인에게는 물론 앞으로 삼성을 위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라 생각한다.

이재용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이병철 손자나 이건희 아들이 아닌 우리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진심이었다면 그는 2015년과 2016년에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남몰래 만날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비닐 천막 하나로 추위를 피해가며 강남역 삼성전자 홍보관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피해 노동자들을 찾아가 만났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가 진정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넘어서는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면 삼성그룹이 유지해 온 ‘무노조 경영전략’을 폐지했어야 한다.

삼성의 반도체 산업은 과거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빼앗아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어떤 화학물질을 노동자들이 사용했는지는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고, 백혈병 등 희귀질환의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먼저 피해자들을 찾아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한 명의 피해자도 제외되지 않는 제대로 된 보상절차를 마련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 대책을 외부 전문가의 지혜를 두루 모아 구상했다면 이재용의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가치 있는 삼성”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지만 이미 총수와 다름없다던 이재용의 삼성은 과거의 삼성과 다른 새로운 가치가 전혀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천문학적인 재산과 지위가 어느새 이재용 부회장에게 옮겨 갔다는 것이다. 값비싼 주식을 잘게 쪼개 더 많은 사람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고 하여 국민회사가 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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