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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초기 이민자 시절 영어학교에서 만난 다른 나라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보고 의아해했다. “자동차 생산국에서 자동차도 못 만드는 나라로 왜 살러왔지?” 청각 장애를 가진 큰아이 교육 때문에 이민을 온 나로서는 몇 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후진국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한국의 경제력과 교육 문화의 불균형한 발전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영어 교사는 자기 나라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실례되는 질문’ 혹은 금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대부분 나이나 종교 같은 상식적인 내용을 거론했다. 좀 특이한 것을 찾다가 나는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으면 실례가 된다”고 말했다. 모두들 놀라워하며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 문제 역시 몇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한국 사람들끼리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라고 얼버무렸다.

캐나다 영어 교사가 이 문제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세칭 명문이든 아니든 출신 대학 밝히기를 꺼리게 하는 차별 문화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신 대학 이름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도 토론토·맥길·퀸스·UBC·워털루·웨스턴온타리오 등 명문 소리 듣는 대학이 꽤 많다. 그런데 명문은 명문으로 끝날 뿐이다. 명문은 있으되 명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 나와 우대 받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명문대든 2년제 전문대든 떠받들거나 낮춰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없다. 취업을 할 때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따라 우대 혹은 홀대하는 경향이 없으니 주눅들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더더욱 없다. 딱히 명문을 지망하기보다는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학업 능력에 맞는 대학을 찾아가는 분위기이니,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이 실례가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매체가 대학 순위를 매겨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 지망자도, 학부모도 그런 랭킹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주변 어느 집 자식이 미국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런가 보다’ 하며 축하할 뿐, 크게 부러워한다거나 ‘우리 아이도 꼭 보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학 이름이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냐’의 여부이다.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자기 성향과 능력에 맞는 전공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다면, 2년제 칼리지가 세칭 명문대보다 훨씬 좋은 곳일 수 있다. 전공이 맞지 않아 대학 재학 중에 과를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리 큰아이처럼 2년을 다니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일단 졸업은 하지 그러니?”라고 한국 부모답게 권유했더니 “시간과 돈이 아깝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아이는 전공과 대학을 다시 선택해 입학한 이후 전에 없이 행복해하고 있다.

한국 매스컴에서 ‘SKY’라는 영어 단어를 자주 접한다. 한국 사람 중에 이 단어를 보고 대학이 아니라 ‘하늘’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어느 은행 면접시험에서 대학을 차별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SKY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특정 대학들을 최고 명문이라 명토 박고 띄워주는 저 단어에 학벌주의, 대학 순위, 줄세우기, 차별대우 같은 의미가 이미 농축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논어 6-18)고 했다.

명문이라는 허울보다 ‘좋아하고’ ‘즐기는’ 공부를 더 권장하고 우대하는 서구사회가, 유교 문화권의 동양보다 공자 말씀에 더 충실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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