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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 기회다. 열심히 해보자.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 알지?” 고3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이렇게 마무리하자 뒤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안되는 게 어떻게 돼요?” 캐나다 고속도로에서 ‘Zero Tolerance’라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이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음주·과속 운전 금지 표지판 옆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보통은 ‘무관용’이라 번역되지만 ‘안되는 건 절대 안된다’ 또는 ‘절대 안 봐준다’로 해석해야 더 실감이 난다.

평소 토론토는 서울보다 운전하기가 여러모로 편하고 수월한 도시이다. 인구 밀도가 낮고 덜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교통 법규가 비교적 ‘널널하고’ 운전자에게 자율성을 많이 보장하니 그럴 것이다. 도로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도, 유턴도 할 수 있다.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대신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어기면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른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지 않은 초기 이민자들은 범칙금을 수업료처럼 내가며 교통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토론토에 살러온 직후 나도 단속 티켓을 연달아 받았다. 제한속도 20㎞의 공원 도로에서 38㎞로 달리다가 경찰을 처음 만났다. 며칠 후에는 빨간불에서 그냥 우회전했더니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따라왔다. 일단 멈춤 위반. 처벌이 범칙금과 벌점으로 마무리된다면 별일 아니겠으나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보험료가 껑충 뛰고, 티켓이 여러 장 쌓이면 보험사에서 이듬해 재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 지경에 이른 운전자는 말썽꾸러기 전문 보험사를 찾아가야 한다. 보험료가 몇 배 비싸다.

보통의 경우가 이 정도이니 어린이 보호라든가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위반은 처벌 강도가 훨씬 더 높다. 비상등을 번쩍이며 경적을 울리는 소방차와 구급차, 멈춤 표지판을 올린 스쿨버스가 보이면 도로 위 모든 차량은 얼어붙은 듯 정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토론토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참 높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봄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드러난 개똥이 지천이다. 동네 숲길에서는 사시사철 똥 밟기 십상이다. 물론 개를 끌고 나온 주인이 방치한 것이다.

빨간불만 보면 휴일 새벽 아무도 없는 좁은 도로에서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들, 보는 사람 없으면 개똥을 그대로 두고 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 평범한 토론토 시민들이다. 법규 준수 여부는 개인의 양식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개똥의 경우를 보면 단속과 처벌의 영향을 확실히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경찰이든 공무원이든 눈에 불을 켜고 단속에 나선다면 개똥은 봄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2018년 새해 첫날 강릉소방서 앞에 차량들이 불법 주차했다는 보도(경향신문 1월1일자 ‘119 긴급차량 진출입 막은 해돋이 관광객의 안전불감증’)를 접하고 많이 놀랐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포119안전센터 관계자의 말이었다. “새해 첫날임을 감안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계도·주의 조치만 했다.” 이 말은 관광객의 안전불감증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널리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가 새해 첫날을 알아보고 비켜가는 것도 아닌데, 소방서 앞에 불법 주차를 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캐나다에서 대형 참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되는 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되기 때문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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