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7년 만에 유럽여행을 했다. 이번에도 시작은 독일 항공사 승무원의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한국의 동종업계 종사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이도 많았고, 날씬하지도 않았고, 또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편안했다. 한국인 승무원도 여러 있었지만 안경을 낀 ‘여’승무원은 전부 독일 사람이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여전했다. 교과서에나 보던 건축물, 엽서에서나 보던 풍경을 마주하는 기쁨도 대단했지만 역시나 기억에 남는 건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 수다 삼매경인 노인들로 붐볐다. 혼자서 맥주 한 병만 테이블 위에 두고 온종일 사람구경만 하는 할아버지, 신문의 가로세로 낱말 퀴즈에 몰두하는 돋보기안경을 쓴 할머니들의 여유는 신선했다.

스타벅스 제공

시골 어디를 가더라도 적당한 거리마다 있는 동네빵집의 복작거리는 아침 풍경은 특히 정겨웠다. 가게 안에는 몇 대에 걸쳐 빵집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고 손님과 주인은 빵 하나 사고팔면서도 오랜 인연이기에 가능한 잡담을 이어갔다. 동네사람들은 출근하며, 등교하며 여기부터 들렀다. 맛이 끝내준다는 상투적인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작은 마을이 유지되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런 기운이 있는 시골은 규모가 작을 뿐 결코 휑한 느낌이 아니다. ‘쇠락’ 같은 표현은 인구의 절반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한국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변한 것도 있었다. 도시는 특색을 알 수 없는 서울의 모습처럼 변해 동질성을 자욱하게 풍겼다. 공항과 중앙역,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에는 같은 상호의 가게들이 즐비했고 여러 상점으로 분산되어 있던 제품들은 쇼핑몰 안에 모여 있었다. 고군분투하며 가업을 이어가는 작은 가게들을 찾는 손님은 없었지만 그 옆의 ‘1 EURO SHOP’은 문전성시였다.

우리 가족이 여행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저기 스타벅스 있네. 좀 쉬었다가 가자!”였다. 스타벅스 매장이 1000개가 넘는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관광객이 붐비는 유럽 어디에서든 익숙한 로고의 커피전문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프랑스는 좀 인상적이었는데 파리 도심에서 루브르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양 기둥에 좌청룡 우백호처럼 스타벅스, 맥도널드가 있었고 심지어 박물관 안에도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 유물들을 마치 프랑스 소유물처럼 의기양양하게 모아둔 곳에서 미국 기업이 돈을 벌고 있는 게 이상할 이유는 아니지만 순간 명동 번화가와 비슷하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런 변화를 비판했지만 몸은 이미 한국에서 익숙해진 그곳이 너무 편안했다.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직원들은 손님과 적절한 무관심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니 테이블 인원보다 좀 부족하게 주문해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화장실도 다른 어떤 곳보다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긴장된 여행 중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공간 사용이니, 우리 가족은 마치 때가 되면 교회를 가듯이 의례적으로 그곳에 가서 안락함을 구매했다.

한국과 비슷해진 유럽에서 원래의 익숙함을 반복하는 여행이라니, 우려스러운 지구촌 한 가족의 탄생이다.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가서도 동일한 브랜드에 차곡차곡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다양성이 실종되는 문제를 떠나 이건 개인의 행복에 관한 문제다. 거대자본에 무조건 유리한 승자독식 구조가 만드는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여유로운 노년생활, 편안한 모습의 노동자가 존재할 수 없음은 이미 한국에서 증명되었다. 동네빵집의 운명도 분명 비극적일 것이다. 더 절망적은 것은, 그런 때가 오더라도 유명 브랜드의 빵을 쉽게 구해 먹으면서 익숙함에 위로받을 내 모습이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