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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이제 집집이 씻나락을 꺼내 담그고, 논 못자리에 물을 대고 있다. 밭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두고 나면 논일이 시작된다. 이 무렵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 뒷간 거름을 내는 것. 뒷간은 처음 지을 때부터, 어떻게 지어야 조금이라도 쉽게 똥오줌을 모으고, 거름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었다. 집이 마을 한복판이라 뒷간에서 냄새가 나거나, 벌레가 끓는 것도 안될 일이고, 뒷간에서 꽤 시간을 끌기도 하니까 안에서도 좀 그럴듯해 보이면 좋겠고. 다행히, 십 년 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그럭저럭 뒷간을 쓰고 있다.

똥오줌을 누는 걸 두고 ‘눈다’고도 하고, ‘싼다’고도 한다. 요즘은 어감의 차이 정도로만 둘을 나눈다. 사전에도 ‘싼다’는 ‘눈다’의 속된 표현이라고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둘을 가르는 것에 대해 김수업 선생은 다스림의 차이라고 했다. 스스로 잘 다스려서 내보내는 것이 ‘누다’라면, ‘싸다’는 아이가 바지에 ‘싸’ 버리는 것처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뒷간을 지어 똥오줌을 모으고 거름으로 내면서 지내는 동안, 동네 할매들이 ‘누다’와 ‘싸다’를 말하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전에도 들었겠지만, 거름을 내면서야 들리게 되었을 테지. 할매들 기준에는 다스림 말고 ‘쓰임’도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싸는 것은 ‘싸 버리는’ 쪽이라면, 누는 것은 ‘누어서 모아 놓는’ 쪽 같았다. “옛날은 집이 멀어도 남의 집서 안 싸고, (거름하려고) 집에 와 (똥을) 눴어” 하는 식으로. 할매 말에 따르면 시골에 와서야 똥을 ‘누는’ 삶을 살게 된 셈이다.

식구가 다섯이니, 뒷간 거름으로 나오는 것도 아주 적지는 않다. 여기에 풀 거름, 재 거름을 더한 것이 거름의 전부. 늘 그것으로 기른 채소와 곡식을 먹고 지내서인지,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고(실제로 통마다 쌀겨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양새다.) 모자라지는 않을까만 헤아린다. 아이들도 이 거름으로 밭에서 키운 게 맛이 좋다는 걸 알아서, 뒷간을 쓰고, 오줌통에 따로 오줌을 모으고 하는 일에 익숙하다. 먹는 것은 즐겁고, 누는 것은 개운하다고.

처음에는 그동안 살면서 익혔던 습관하고는 완전히 다른 식으로 뒷간을 만들어서 그걸 쓰고, 거름을 모으고, 다시 논밭에 내고 하는 모든 일들이 한 고개, 한 고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집에는 양변기도 있었는데. 의무감으로 쓰던 뒷간은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냥저냥 일상이 되었다. 뒷간에 앉으면 개울 건너 감나무 밭이 보이는 것도 더없이 익숙한 나날의 풍경이고. 물론 그걸 오래 보고 있지는 않는다. 누는 것은 찰나일수록 좋고, 그래야만 하니까. 시간이 짧을수록 상쾌한 기분도 더 들고, 몸에 병도 생기지 않는다.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새겨듣는 게 좋다. 이 대목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글을 하나 따로 써야 할 텐데.

거름을 내는 것은 그리 일이 많지는 않아서, 왕겨가 수북이 쌓인 통을 여남은 개 꺼내어 옮기기만 하면 된다. 뒷간을 쓰면서 때마다 왕겨를 붓고, 통이 차면 그걸 바꿔 준다. 그러면 통을 가져가서 ‘거름간’에 쏟아붓는 것으로 일이 끝난다. 오줌통도 따로 모으고. 이게 제법 간단해진 것은 최근에 나오는 캠핑용품 덕이다. 캠핑장에서 쓰이는 변기들이 적당히 똥오줌을 가리고, 재어 놓고, 옮기고 하는 데에 쓰기 좋게끔 나와 있어서다. 변기 말고도, 캠핑 바람이 불면서 새로 쏟아져 나오는 캠핑용품 가운데 시골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꽤 있다. 이런 것은 도시에서도 쓸 수 있겠다 싶은 것도 있고.

예전에 서정홍 선생이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도시 텃밭 모임에 갔더니 다들 오줌통을 줄줄이 들고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골에서야 집 생긴 모양새나, 가까이에서 농사짓는 것이나 어떻게든 똥오줌을 모아서 거름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아파트에 살면서도 그렇게 애쓰는 분들이 있다니. 그렇게 가꾼 텃밭 채소들, 얼마나 맛이 좋을까.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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