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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나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화염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슬픔에 젖은 채, 그 상실의 순간을 직시했다. 한 파리지엔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엄마를 잃은 것 같아요. 노트르담 성당은 우리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였어요.”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이 나온다. “지금은 정치를 할 때가 아닙니다. 노트르담 성당은 우리의 역사이자 문학, 정신의 일부이자 우리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성당을 더 아름답게 재건할 것입니다. 5년 이내에 작업이 마무리되길 희망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거실에서 조용히 TV로 이를 지켜보는 나에게 어떤 심리적 데자뷔가 일어난다. 첨탑이 배의 선체로,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은 물로 덮인다. 그리고 한 엄마가 절규하며 말한다. “내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 이어지는 대통령의 연설은, “오늘은 정치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정신의 일부, 가족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궁에 빠진 채,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로 들렸다. 아니, 느껴졌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자 최대 관광명소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 오후(현지시간) 발생한 대형 화재로 첨탑이 무너지고 있다. 나무와 납으로 이뤄진 96m 높이의 첨탑은 화재 발생 1시간 만에 전소됐다. 파리 _ AFP연합뉴스
매년 이맘때, 벚꽃잎과 함께 흩날리듯 불어닥치는 상실감이 있다. 몸과 마음이 시리고 환절기 감기까지 찾아든다. 2014년 4월 당시, 나는 산후 우울증으로 시작된 우울 증상을 겪고 있었다. 자가진단을 해본다면, 1985년 갑작스레 닥쳐왔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내 나이 14살, 또래보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에 어떤 매뉴얼도 찾지 못해 혼돈 상태가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진하게 경험하던 유년 시절, 애인처럼 사랑했던 아버지는 늘 너무 바빴다. 삐치고 속이 상해, 애정을 갈구하는 심정을 부러 무관심으로 포장하던 어느 겨울 아침, 아버지는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며 내게 수프를 끓여달라고 하셨다. 마침 친구들이랑 놀러 가기로 한 시간에 늦기도 한 데다, 아버지가 미운 마음에 “나가서 사드시라”고 매정하게 쏘아대고 현관문을 나섰다. 정나미 떨어질 법한 딸내미 뒤통수에 대고 아버진 그날따라 유난히 여리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감기가 독하게 온 것 같으니 병원 가야겠다. 조심해서 다녀, 이쁜 딸!” 그것이 아빠를 본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상실감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아버지와 비견할 만한 사랑의 대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 아이가 죽는 악몽을 꾸는 산후 우울증 증상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상실감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되는 과도기에, 아빠를 떠나보내는 진심 어린 애도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고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팽목항 방파제 ‘기억의 벽’에 남겨진 세월호 유가족의 메시지. 피붙이를 그리는 애끓는 절규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김형규 기자
당시 세월호의 아이들은 그렇게 내 개인적 삶으로 파고들었다. 정말 아파도 너무 아팠다. 하지만 돌아보면, 상처가 매개가 되어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있다. 또한 인생의 어느 때엔가 상실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에 나처럼 함께 아파했다. 우리 사회에 이토록 슬픔의 공감이 강처럼 흘러넘쳤던 때가 또 있을까.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공감의 능력은 지속되고 있다. 오늘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슬픔이 위로로 전환되는 참 소중한 순간이다.
이제 세월호의 진실이 수면 위로 인양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세월호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진정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사회의 아픈 곳을 꿰매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추상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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