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당신이 외국인이라고 치자. 지금 당신은 한국의 경찰서에 있다. 당신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고,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평범한 하루였다. 일터에 여러 명의 경찰관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경찰관들은 동료들 앞에서 당신을 체포했다. 그날 경찰은 당신의 이름과 나이, 국적 등 개인정보를 ‘취재안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TV와 인터넷에는 보도가 쏟아졌다. 사회적으로 당신은 이미 범죄자로 불린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당신은 낯선 타국의 철창살이 주는 고립감과 범죄자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온전히 견뎌야 한다. 그날 저녁 조사가 시작된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경찰관이 앉아 있다. 무방비 상태의 당신에게 오랫동안 훈련된 수사전문가의 준비된 질문이 시작되었고, 이미 당신의 멘털은 붕괴되어 버린 상태이지만 애써 정신을 붙잡고 힘겨운 대답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경찰관이 표정을 싹 바꾸며 묻는다. “왜 거짓말을 하나요?” 여덟 글자밖에 안되는 이 짧은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공권력은 자기방어가 취약한 사람을 상대로 작동할 때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사소송법의 중요한 원칙들은 늘 가장 힘없는 사람이 만들어 냈다. 수사기관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체포의 이유와 진술거부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전에 알려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도 1966년 미국 애리조나 주 멕시코계 이주민 ‘미란다’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피의자 미란다가 용의자로 체포된 이후 자신의 권리에 대한 안내 없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2시간 동안 조사받으면서 범죄를 전부 자백한 진술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위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경찰 피의자 신문의 전체적인 주안점은 (중략) 피의자를 감정적 상태에 몰아넣어 합리적 판단 능력을 훼손하는 데 있다”(Miranda v. Arizona 384 U.S. 436, 1966)는 시대를 앞선 통찰을 보여주었다.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저명한 형사법학자인 리처드 레오 교수는 그의 책 <허위 자백과 오판>에서 경찰은 피의자에 대한 조사과정을 압력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채 자발적인 자백으로 이어지는 “진실 발견에 관심을 쏟는 중립적인 정보 수집과정”으로 묘사하지만, 실제는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로 하여금 범행을 시인하게 만들 목적으로 구체적인 일련의 심리적 효과와 반응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처음의 가설로 다시 돌아가 보자. 경찰관은 이후로도 당신에게 무려 수십 차례에 걸쳐 “거짓말을 하지 말라”며 다그쳤다. “100% 거짓말이다”라며 확신에 찬 모습도 보였다. 당신이 일상적인 한국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통역을 왜 불렀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당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 변호사를 부를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먼 타국까지 와서 노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소식을 듣고 선의로 달려온 변호사를 만나기 전에 이루어진 1차 조사는 나중에 보니 질문과 답변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 사실 이건 가설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어떤 외국인에 대한 조사의 일부다. 수사기관은 당사자의 진술을 “거짓말”이라 판단하여 반복 추궁할 필요가 없다. 진술과 배치되는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 별도로 증거를 통해 진술을 반박하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를 반복적으로 ‘추궁’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자백을 받아내고자 하는 잘못된 의도를 보여줄 뿐이다. 혐의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고려하여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 해야 할 일이지 수사기관의 몫이 아니며, 수사기관은 무죄로 추정되는 당사자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설령 그것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진술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특히, 피의자가 외국인이라면 제대로 교육되고 훈련된 통역 인력을 확보하는 게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