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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까요?” 강연을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나는 저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늙은 꼰대와 자유로움에 취해 의미 있는 조언조차 무시하는 젊은 꼰대를 함께 다룬 바 있는데, 인권감수성이 높아진 사회의 공기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으니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어찌 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상처를 받거나 주는 경우를 모으면 어떤 사람이 이상한지는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꼰대란 극도의 자기중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막무가내로 나답게만 살라는 식의 가치관이 자존감을 지키는 법이랍시고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정글 같은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나’를 오롯이 존중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솔직히 그런 성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다른 단점을 보지 못하는 외골수, 그래서 주변의 합당한 비판을 비난으로 이해하여 날 선 대응으로 인간관계에 무리수를 두는 사람이 훨씬 많다. 외부와의 생산적 교류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비슷한 무리들만을 만나 그릇된 신념을 견고한 양심으로 만들어 행동하며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조차 모른다.
이들은 거시와 미시 사이의 균형 감각이 없다. 거시는 사회의 역사와 문화라는 사회구조를 뜻하며 미시는 그 울타리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특정한 가치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말한다. 아무리 사소한 생활습관도 사회의 물줄기와 동떨어져 있지 않은데, 이 관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보수꼰대라고 불린다. 살다 보니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게 된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자연적 질서로 이해하면서 불평등을 부정한다. 이런 부모, 교사, 선배나 상사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거시에만 몰두해 일상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수순을 깡그리 무시하는 진보꼰대들도 주변인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일상생활 속에 등장하는 해프닝조차 구조악의 표출이라면서 폭력, 권력, 기득권 등의 무서운 단어를 오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발가벗긴다. 사회운동의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해 적을 설득시키기는커녕 동일한 목표를 지향했던 아군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공격받은 이들은 상처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또한 꼰대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제대로 응용하지 못한다. 점의 관계는 느리다. 의사전달이 우회적이기 때문이다. 눈치 때문이 아니라, 사람 각기의 상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 관계는 단호하다. 메시지가 파이프에 연결된 물처럼 일사천리로 타인에게 전달된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폭력을 없애고 적폐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강한 다짐과 뒤돌아보지 않는 빠른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무작정 선을 들이대면 당혹스럽다. 누구나 상처가 있기에 누구의 상처도 조심스레 다뤄지는 신중함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표만이 가시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반대로 반드시 선의 관계가 필요할 때 점의 모호함을 버리지 못하면 문제의 본질이 덮어진다. 반드시 가해자를 가려내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순간에,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주변 사정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된다.
우리들은 꼰대에 저항하면서도, 다른 영역에서 자신이 꼰대임을 쉽게 잊는다. 자신의 장점에 심취해 단점을 망각하면 관계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꼰대가 아닐 거라는 확신과 결코 그렇게 되지 않겠단 지나친 다짐보다, 꼰대일 수 있다는 자책을 성찰로 발전시켜 나갈 때 주변 사람들의 불편이 경감되지 않겠는가.
<오찬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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