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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시선]마리화나 유감

opinionX 2018. 10. 30. 11:07

나는 대마초에 대해 약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대마초에 관한 어릴 적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가수들이 어느날 갑자기 신문 사회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던 이를 비롯해 주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가수들이었다. 그들은 요즘 아이돌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신문에 등장한 그들의 모습은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사진에는 ‘대마초 가수’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의 중·고교 시절 그런 기사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좋아하던 가수 대다수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동년배인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백분토론>에 나와서 한 말이 있다. “70년대 말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거의 종적을 감춥니다.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대중음악의 맥이 끊깁니다.” 나는 그가 한 말의 속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대마초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큰 죄가 되는 줄도 모르고, 단지 담배처럼 그것을 피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라성 같은 대중음악 스타는 하루아침에 반사회적인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때 이후 대마초(마리화나)는 마약의 대명사처럼 들렸다.

토론토에 살면서 마리화나를 흡연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다. 엄지와 검지 끝으로 잡고 피워서 그런지 담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냄새가 달랐다. 담배보다 역했다. 2015년 마리화나 합법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저스틴 트뤼도가 캐나다 연방총리에 취임한 이후 마리화나 연기는 눈에 더 자주 띄었다. 급기야 두어 달 전에는 길거리에서 마리화나에 취한 젊은 사람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는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지나갔다. 마리화나 냄새를 풍겼고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댔다.

이런저런 우려 속에 10월17일 캐나다가 오락용(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의료용은 2001년). 국가로는 우루과이에 이어 두번째이다(미국은 8개 주에서 합법화). 환각 작용을 하는 오락용 마리화나의 합법화에 대해서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으나 지난 6월 이 법안은 캐나다 상원을 결국 통과했다.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마리화나를 법으로 관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막대한 유통 수익을 범죄조직으로부터 빼앗아 세수를 늘리겠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금지를 해도 확산을 막을 도리가 없고, 또 술과 담배에 비해 더 유해할 것이 없다면 아예 합법화하여 철저하게 관리하는 쪽이 더 낫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

대마초에 대한 일말의 공포감을 가진 나로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4그루로 제한은 했으되 개인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것까지 허용했으니 정서적인 이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리화나를 판매하는 주체가 주정부라는 사실도 심리적 혼란을 부추긴다. 내 연배의 한국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합법화 이후 마리화나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지만 사회 분위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 한편, 동성결혼이나 안락사처럼 마리화나도 캐나다의 다양한 문화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환각 성분을 제거한 의료용 마리화나도 금지한다고 들었다. 대마초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과 공포감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치성 뇌전증과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마리화나 오일 치료제를 ‘해외직구’해도 법에 저촉된다고 한다. 대마초가 우리에게 마약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는 ‘오락용’과 ‘의료용’ 정도는 이성적으로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락용 마리화나도 합법화하는 나라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의료용 마리화나를 치료제로 쓰게 해달라는 난치병 환자들의 요구는 절박하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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