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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시선]한 뼘의 성장

opinionX 2018. 10. 22. 10:16

중국동포 ㄱ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그는 그동안 아파트 출입구 경사로에서 가까운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한다. 주민센터에서 나눠주는 노란색 ‘장애인 전용 주차표지 스티커’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스티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ㄱ씨의 장애인 주차표지 스티커에는 ‘재외동포/외국인’이라고 구별되어 표시되어 있는데, 지나가던 아파트 주민들이 ㄱ씨의 차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면서 ‘이제 외국인이 장애인 주차장까지 다 차지하고 있다’며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에 따라 내국인 장애인 주차표지 스티커는 차량 운전자에 따라 ‘본인용’과 ‘보호자용’으로만 구별되지만 외국인 장애인의 주차표지판은 별도로 ‘외국인’이라는 내용의 국적 정보가 표지판에 기재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좀 더 편리한 주차구역을 이용하는데 한국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설령, 행정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재외동포/외국인용 주차표지 스티커를 별도로 만들어 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하는 이유는 뭔가?

고양시 저유소 폭발 사건 관련 보도에서도 그랬다. 폭발 원인으로 인근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린 용의자가 체포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국적이 ‘스리랑카’라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독일 기자협회가 만든 언론보도준칙에는 ‘범죄 보도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우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종교나 인종, 장애 여부, 성별, 국가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정해두고 있지만, 우리나라 범죄 보도에서는 용의자의 국적과 종교가 제일 먼저 등장하고 강조된다. 당사자의 국적이나 종교를 공개하는 것이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도 아닌 것 같다. 난민 지위를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임시체류자격을 인정받은 예멘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기종, SNS 과거 게시글, 심지어는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까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그 사이 예멘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왜 이들이 자국을 등지고 먼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차분히 설명하는 기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무슬림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는 사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취재를 통한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늘 관련자 인터뷰로 처리되는 무슬림에 대한 ‘우려’와 ‘공포’만 모아 보면 제주도로 도망 온 예멘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특수 훈련이라도 받은 사람들 같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예멘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세상이 언제나 평화롭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남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는 계속되는 빈곤과 범죄조직에 의한 치안 붕괴를 피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국을 탈출하고 있다. 멕시코를 지나 미국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을 향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서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살기 위해 피란 행렬에 오른 가난한 사람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비극적 현실이 대부분 공중파에 보도되고 있을 무렵, 종이 한 장에 적힌 짧은 글이 온라인에 공개되었다.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얼마 전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바라며 시위에 참여했던 중학생들이 친구의 난민인정을 환영하며 쓴 글이었다. 짧은 시간 난민을 향한 사회의 적대를 오롯이 경험한 학생들은 자신들은 잊혀지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작은 이정표’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이들이 있어 세상이 어제보다 한 뼘만큼 자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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