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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해 전이었나, 학교 급식지원센터를 두고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곳은 학생은 적고 학교마다 거리가 아주 먼 시골이라, 급식을 운영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당장 식재료를 받는 것부터 걱정. 그래서 교육청에서는 공공시설 가운데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급식지원센터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제안을 군청에 했다. 하지만 군청에서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면 어렵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흐지부지되었다. 지역에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는 공공시설이 없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났다. 늘 비어 있고, 거의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그런 시설 몇 군데가 금방 떠올랐지만, ‘그래, 공무원 기준과 일반 시민 기준은 늘 다르니까’.

‘지역밀착형 생활SOC’라는 것을 늘린다고 한다. 도서관이나 체육시설도 늘리고, 전통시장도 더 가기 좋게끔 하고, 지방에는 공공병원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이것 말고도 당장 그야말로 하루하루 삶이 바뀔 만한 사업들이 꽤 있다. 동네에 차량 통행도 얼마 되지 않는 국도를 4차선으로 늘린답시고 돈을 퍼붓는 것에 견주면 얼마나 즐거운 소식인지.

하지만 급식지원센터 일을 겪을 때도 그랬고, 지역의 체육시설이나 공공시설이 쓰이는 것을 봐도, 이미 있는 시설을 누구나 필요한 데에 쓸 수 있도록 하고, 더 넓게 개방하는 것이 먼저이다. 얼마 전에 귀농인들이 모이는 장터에 간 적이 있다. 그날은 비가 와서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서 장터를 열었는데, 평소에 그 시설을 쓰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구박을 했다. 그런 일이 전부터 반복되어서, 다음부터는 아예 비 오는 날에는 장터를 열지 않기로 했다. 시설을 관리하는 공무원은 공공시설이기는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해서 한 모임에 알아서 관리하도록 맡겼다고 했다. 공무원은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나를 두고는 ‘외부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공공시설이 공무원과 그것을 관리하는 모임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않을까 싶다.

지역의 많은 공공시설이 지을 때 큰돈을 들인다. 그렇게 짓고 나서, 들인 돈만큼 잘 쓰이지 못하는 시설은 얼마나 많은가. 관리라는 명분으로 지역의 토호나 유지가 얽혀 있는 단체한테 위탁을 주고 나면, 그때부터는 다른 모든 시민들에게 닫힌 시설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된 시설은 많은 시간 텅텅 비어 있다. 관리를 맡은 공무원은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비어 있고, 닫혀 있는 시설을 잘 쓰는 것에 힘쓰는 공무원은 찾기 어려운데, 시골이야말로 이런 일을 따로 맡아서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골의 여러 시설이 충분히 잘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적다는 까닭도 있다. 생활SOC에 가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한 통계도 나왔는데, 당연히 시골이 나쁘다. 그걸 촘촘히 메꾸려고 하면 텅 빈 시설이 더 늘어나겠지. 그런 곳에서는 시설을 더 세우는 것보다, 그런 일과 내용을 담은 사람들이 찾아다니도록 하는 것이, 생활 밀착 공공시설을 세우는 것과 같은 효과일 것이다. 체육이든, 문화든, 의료든, 건물을 짓고 마는 게, 가장 뒤탈 없는 예산 집행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좋겠다. 책 없이 시작하는 도서관이 더 많아지는 것보다는, 책 읽는 문화를 가꾸는 일이 다양해지는 쪽이 좀 더 책과 가까운 사회가 되는 방향이지 않을까.

공공시설을 새로 짓고 운영하는 데에 ‘공무원의 기준’과 ‘시민의 기준’이 서로 멀어질수록 공공시설은 공공을 잃고 공무원의 시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심지어는 전임 단체장이 시민의 공간으로 바꿔 놓은 공관 건물을 다시 자기가 쓰겠다며 시민한테서 빼앗아 오겠다는 단체장도 있다. 공공시설을 제 맘대로 하겠다는 공무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새로이 짓는 시설도 시민과 가까워질 수가 없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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