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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된다면서 세상은 늘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곤 하지만,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하는 실패는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어쩌면 실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 취업, 사랑, 돈 때문에 세상은 패배자란 낙인을 찍는다. 그래서 실패는 꼭꼭 묻어두었다가 성공하고 나서야 꺼내보이는 후일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으려면 덮어놓고 노력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밤을 새워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방탄소년단이 되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이나 행운은 우리 곁으로 날아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실패박람회’ 현장을 방문해 한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좇을 수 없는 성공스토리 대신 실패의 과정을 모으고 나누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실패가 달가울 순 없지만, 인생을 성공이나 실패로만 구분짓지 말자는 취지다. 2008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페일콘’은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행사다. ‘실패’(fail)와 ‘콘퍼런스’(conference)의 합성어에서 행사명을 따왔다. ‘실패’를 주제로 삼은 이 회의는 이제는 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열린다.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도 있다. ‘퍽업’은 ‘개판’ ‘엉망이 되게 함’이라는 뜻으로, 퍽업 나이츠는 여러 차례 시도했다 ‘개판’을 만들어본 사람들이 그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에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인 ‘실패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라는 이름이 걸리긴 하지만,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란 주제로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행사다. 박람회에서는 한때 피자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대박’을 터트렸지만 수차례 파산을 겪은 ‘성신제피자’의 성신제씨, 첫 식당을 개업할 때 전 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방송인 홍석천씨 등이 자신의 실패담을 풀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폐막일인 일요일에 박람회장을 찾아 ‘국민 모두의 마음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물론, 실패박람회 한번 열렸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 아닌 실패로 끝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과는 달리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에릭 와이너는 <행복의 지도>에서 아이슬란드는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라고 썼다. 이 한마디에 아이슬란드로 떠난 이가 있다. 공사판, 식당, 과수원에서 일하며 30년 가까이 신춘문예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낙선한 50대의 작가 강은경이다. 자신이야말로 패배자라고 여겼던 그는 되레 실패를 찬양한다는 말에 오랜 꿈을 접고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소설가가 되려다가 좋은 시절 흘려보내고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실패자!” 아이슬란드 호숫가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그는 고해성사를 하듯 인생의 추레한 시간들을 늘어놓았다. 그때 할머니가 물었다. “당신, 인생 실패한 사람 맞아요?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세상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실패를 비난하기는커녕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라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성공에 이르는 경로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준다면 말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온 마당에 젊은이들이 실패해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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