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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한데 어울려 몰려다니던 어린 시절, 야구장도 함께 가고 그랬다. 그때 야구장에는 소주가 흔했다. 3회가 지나기 전, 불콰해진 아저씨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였다.

이후 다들 사느라 바빴다. 야구가 멀어졌다. 한때 ‘야구가 없으면 어떻게 사냐’던 친구들은 나이와 함께 ‘야구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를 깨달았다. 가끔 일본을 이겼을 때, 금메달을 땄을 때 한 번쯤 아, 야구가 잘했구나. 그 정도.

한 친구가 묻는다. “근데 말야, 유격수가 실책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나름 전문가라고 불리는 적도 있으니, 설명을 시작한다. “실책이라는 기록은 말야, 심판이 아니라 기록원이 판단하는 거거든. 정상적인 수비로 처리할 수 있었던 타구인지 여부를 판단해서 결정하는데, 실책은 포구와 송구를 모두 따져봐야 해. 무엇보다 실책은 종종 어려운 타구를 처리할 때 벌어지거든. 정작 수비능력이 떨어지는 내야수는 건드리지도 못할 타구를 쫓아가서 잡아낸 뒤 1루에 던지다가 실책이 기록되는 경우도 많아. 실책 숫자는 되레 수비를 잘한다는 뜻이기도 해. 그거 알아? 데릭 지터라는 메이저리그 유명 유격수는 마이너리그 첫해 실책을 56개나 저질렀어. 구단이 외야수로 전향시키려고 하다가 실책을 분석했지. 절반 정도는 사실상 1루수 실책이었어. 송구가 일단 바운드가 되면, 쉬운 바운드였다 하더라도 무조건 송구한 선수의 실책이거든. 실책 숫자만 보고 그 선수를 외야로 돌렸다면, 메이저리그는 역대 최고 선수를 잃었겠지.”

또 다른 친구가 묻는다. “야, 아무리 홈런 많이 치는 타자라도 삼진이 많으면 문제 있는 거 아냐?” 답은 의무감이다. “홈런과 삼진은 비례하는 기록이야. 홈런을 때리려면 풀스윙을 해야 하니 삼진을 각오해야 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 이치야.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타격 트리플크라운이 81년째 안 나왔어. 올해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선수가 가까이 갔다가 실패했지. 아, 트리플크라운은 말야, 한 선수가 홈런, 타점, 타율에서 모두 1위를 하는 거거든. 홈런과 타율에서 동시에 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래도 득점권 타율이 낮은 건 문제 맞지?”

“득점권이라는 게 그렇게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서, 한 시즌의 샘플로 그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기는 어렵지. 3할3푼 타자가 꼬박꼬박 3타석마다 안타를 때리는 건 아니잖아. 평소에도 잘 치는 타자가 결국 기회가 왔을 때 잘 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야. 선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해당 스탯이 연도별 연관성을 얼마나 갖고….”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야, 너 그거 TMI야. 너네 TMI가 뭔지는 아냐”면서 낄낄거리고 잘라 들어온다. 고애신이 떠올랐다. 분명 내 T를 배우기는 했는데.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약자란다. 처음 뜻과 달리 지나치게 상세한 정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때 쓰인다. TMI는 ‘호오(好惡)’의 영역에 대한 설명을 거부한다. 나는 이게 싫은데, ‘네가 그걸 싫어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순간 TMI 경고다. 거꾸로, 나는 이게 좋은데, ‘너는 그걸 좋아하면 안돼’라고 설명하는 것 역시 TMI다. ‘선비질’이고 ‘설명충’이 된다.

자, 그러면 여기서 추석 전후 최고의 유행어. ‘기자란 무엇인가.’ 가짜뉴스가 파고드는 곳은 ‘호오’의 영역이다. 공감을 핑계로, 원하고 바라는 답을 뉴스로 꾸며 뿌린다. 혹시라는 음모에 거짓 팩트를 얹어 ‘역시 그렇군’이라는 반응을 이끈다. ‘가짜뉴스’는 결국 공감이 아니라 증오를 부추긴다. 기자에게 TMI는 의무다. 잘못된 정보는 고치는 게 맞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누군가 물어보면 또 설명한다.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해당 스탯의 연도별 연관성이 말야….”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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