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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망원동’이라고 답하자 그는 “망원동을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네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어느 특정 동네를 고향으로 답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홍대입구’나 ‘망원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왔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홍대입구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기는 하겠다.
성미산의 서쪽 자락에서 나는 오래 살았다. 정확히는 성산동과 망원동과 상암동의 경계지역에서 자랐고, 어린 나는 여권도 없이 동과 동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1990년대부터 꿩을 잡아 보겠다고 성미산을 타고 놀았고, 망원유수지 인근의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연을 날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한참 걷고 걸어서 합정역이 나타나면 세상의 끝에라도 온 것처럼 머뭇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망원동이라고 답한 나의 고향은 성미산과 한강, 합정동까지를, 그리고 난지도와 연남동 철길 이전까지를 종과 횡으로 모두 담아내는 공간이다. 점과 선으로 구획한 행정구역과는 관계없는, 내 마음속의 지도와도 같다.
작년 여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망원동으로 돌아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회사지만 나에게는 별로 직장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못 되었다. ‘퇴사’를 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 사연이야 무척 길지만, 우선은 접어두고 망원동에서 글을 쓰고 대리운전 노동을 하며 지냈다. 이때 망원동의 구석구석을 낮에는 한가롭게 걷고 밤에는 바쁘게 뛰며 모두 살펴보게 되었다. 망원시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직선도로, ‘망리단길’의 골목과 골목마다 ‘힙’하다는 카페와 공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거리를 걸으며, 어린 시절에는 그 길의 초입에 자리 잡은 동네 빵집 ‘홍순양빵집’이 마치 ‘홍순양길’과 같은 도로명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걷는 고향은, 별로 외롭지 않았다. 어디선가 아홉 살의 내가 나타나 입을 삐죽 내밀고는 함께 걸었다. 그는 내가 첫 안경을 맞추었던 ‘스마트 안경점’에서 안경을 고르고 있거나,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고 우체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장바구니를 대신 들고 있기도 했고,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면세점이 들어선 영풍가든 자리에서 아버지가 잘라주는 갈비를 먹고, 망원시장에서 닭강정을 사 먹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나는 그와 함께 내가 기억하는 망원동을, 나의 고향을, 마치 다시 돌아온 연어라도 된 것처럼 유영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고향은 ‘안녕’보다는 ‘안녕히’가 더욱 어울리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넘어지거나 잠시 쉬고 있던 동안에도 시계태엽은 쉬지 않고 돌았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너무나 빨리 풀려 나갔다. 어느 밤에는 대리운전을 마치고 성미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내가 알던 망원동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합정동에 들어선 높다란 주상복합아파트들 사이로 흐릿한 달이 걸려 있었다.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자기 서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 즈음이다.
어쩌면 모두의 고향은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언제나 재생되거나 개발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간판을 다는 일만큼이나 그 삶과 추억을 보존하는 일 역시 중요할 것이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개발은 단절과 상처가 되기도 하고 연속과 치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온전한 고향으로 기억하는 1세대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을 터전으로 살아 온 선배 세대들이 많지만, 나는 이 도시가 메트로폴리탄으로 이행하고 정착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목도해 왔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자리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골목과 골목이 허물어지는 모습까지도 지켜보았다. 나는 도시의 어느 골목까지를 자신의 고향으로 감각하는 우리들이, 그 소중한 공간에 대한 서사를 타인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들은 기록과 역사가 되고 그 공간을 연속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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