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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금지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는 것은 외부세계가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허용치 않고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행동에 나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핵에 대한 레드라인이 초기에는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에 이어 핵실험이 되었다가 핵실험 이후에는 핵확산 행위가 다시 레드라인으로 설정됐다. 가변적이며,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적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정치 용어가 레드라인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명확히 그은 취지는 이해한다. 이 선을 넘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실험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미 당국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개발해놓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ICBM 기술도 완성단계 직전에 있다는 게 상식이다.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문 대통령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개발을 강행, 머지않아 핵탄두를 장착한 ICBM 개발에 성공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못 박은 것은 신중하지 못한 일이다. 레드라인을 고정함으로써 협상의 유연성이 사라지게 됐다. 핵무기와 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확인되는 순간 선택은 논리적으로 전쟁밖에 없다. 군 통수권자와 국방장관의 견해가 다른 것도 문제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미국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했다”며 “레드라인은 우리가 설정한 것이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수사로 쓴다”고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이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협의한 결과인지도 불확실하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언급은 핵동결을 전제로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한다는, 정부의 2단계 북핵 해법과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이 핵 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동결이 가능하다면 협상을 통해 비핵화 단계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당국자들은 “북한의 위협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부연했다. 시민들이 안보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나 중요하다. 말을 함부로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조차 레드라인을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밝힌 것은 부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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