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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도, 정당도, 정부도 언론 보도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는 제도로 이의 제기를 뒷받침한다. 여러 언론 보도에 대한 고소와 고발도 이뤄진다. 정당 논평은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이해식의 지난 13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제의 발언을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제목의 논평도 정당의 정당한 정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 논평의 몇몇 표현과 그 속에 드러난 의식은 문제가 다분했다. 두 부분이 그렇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블룸버그통신의 ○○○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다.” ○○○으로 처리한 부분은 실제 논평에서 실명처리했다. 논평이 유도했건 안 했건, 온라인에서 기자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언론의 표현, 비유, 서술에 문제가 있다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을 해당 언론사나 데스크에 조목조목 차분하게 반론하면 될 일이었다.

논평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해식이 ‘매국에 가까운 내용’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사과했고, 논평에서 기자 실명은 삭제했지만 1회성 일로 보기는 힘들다. 최근 정권 관계자들의 발화에서 ‘민족’이나 ‘국민’이란 개념이 곧잘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을 불러내 국장을 재현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기도 했다. 

‘국민’과 ‘민족’ 발화의 대척점에 놓인 세력이 수구이자 반동인 건 분명하다. 반민특위를 부정하고, 5·18 망언을 내쏟으며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는 정당이 제1야당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며 사사건건 시비 걸고, 틈만 나면 왜곡하려는 세력도 많다. 지금 한국 사회 기득권 다수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의 후손이다. 

‘국가원수’ ‘민족’ ‘국민’ 같은 개념으로 수구 세력의 반동에 대응해야 할까. 지금의 경제체제 같은 물적 토대를 수호하려는 수구보수 세력은 이런 개념을 활용한 적대적 공생 프레임을 선호한다.

‘국민’과 ‘민족’의 호명은 자칫 위험하기도 하다. 국민은 ‘국(國)’이란 하나의 틀로 사람들을 묶는 말이다. 국가 형태와 내용은 다양할 터인데, 집권 세력이 자신들이 설정한 국가 이념에 동의하는가를 일방적으로 묻고,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비국민으로 가르곤 한다. 주로 수구보수 기득권들이 이 같은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갈래 쳐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해고 노동자와 소수자, 문화예술인 등 수많은 ‘비국민’들이 나와 탄압받았다.

국민은 서양의 ‘People’을 번역한 말이다. 국민은 정부에 대응하는,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는 시민과는 다르다. 여러 사람들이 People을 시민으로 쓰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북한이 국호에 넣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쓸 수 없게 된, People의 또 다른 번역어인 ‘인민’을 다시 불러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란 말에 깃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호명이다.

‘민족’과 ‘국민’ 같은 개념은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갈등과 과제를 가릴 수도 있다. 하나의 틀로 가두는 이 상상의 개념은 ‘나는, 당신은 재벌 총수와 같은 민족인가? 같은 국민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2016~2017년 촛불집회 주최자는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단체들이다. 

2015년 최대 13만명이 모인 이 총궐기 대회는 이듬해 촛불집회의 예고편이었다. 여기에 노동자·농민·청년학생·여성·성소수자·장애인·빈민 등 ‘국민’과 ‘민족’ 개념으로 단순히 포괄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제기한 이슈·의제도 다종다양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여러 비정상이 정상화됐지만, 해결되지 않은 과제도 남아 있다.

정부가 모든 계급, 계층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한다면, 수구반동 기득권과는 평화, 반전, 환경, 노동, 여성권 같은 보편의 가치와 개념으로 맞서야 한다.

‘국민 바깥의’ 존재 취급을 받았던 이들을 아우르겠다면 구체적인 제도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중 하나다. 현안 중엔 국제노동기구(ILO)의 8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등 4개를 비준하는 문제도 있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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